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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목소리를 가졌던 위안부 할머니들(펌글)

세상만사 0 137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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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난 할머니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후보로 계시던 시절, 상대후보였던 이회창이 마침 대구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번 글에 말씀드린 것처럼 전 선거운동 전반에 관여하고 있었고 보안(?)이던 이회창의 동선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할머니들은 이회창을 만나고 싶어 하셨고 공식적 공문을 통해 만남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회창 쪽에서는 절대 만나지 않으려 했고 사실 동선을 알지 못하면 만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전 정대협 실무자들에게 동선, 특히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지점을 알려주었고 제가 먼저 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들을 만났습니다.

정대협 실무자인 여성분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할머니 대여섯분 정도가 함께 계셨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한 분이 저에게 다가와서는 그러시더군요.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가 돈을 받을 수 있게 해 주겠제"

전 사실 깜짝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실무자도 놀라는 눈치더군요.

그러자 다른 할머니가 니는 돈 밖에 모르나, 우리가 돈 받을려고 지금 싸우나?

그러시면서 화를 벌컥 내시더군요.

한바탕 소란이 일었습니다.

니는 돈이 싫어서 좋겠다. 돼지 같은 게부터 시작해서 막말이 오고 갔습니다.

실무자는 당황도 할 뻔한데 할머니들을 달래더군요.

그리고 이회창이 도착했습니다.

이회창은 너무 당황했고 할머니들은 이회창을 둘러싸고 여러가지 의견들, 그 의견들이 어떤 것인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쏟아내었고 얼굴이 벌개진 이회창은 특유의 시니컬한 표정으로 난감한 표정을 짓더군요.

결국 실무자의 중개로 요구서를 전달하고 10여분의 노상 면담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당연히 이회창 쪽은 자신의 정보가 어디서 새어나갔는지 문책을 했고 담당자는 혼쭐이 났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받은 느낌은 할머니들의 요구와 이해는 아주 다양했고 그 이해와 요구는 늘 상충되어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 뒤로 몇 번 집회나 모임에서 비슷한 현상이 되풀이 되는 것을 보면서 제가  생각했던, 할머니들께서 인권운동가로서 싸우고 계시다는 생각과는 많은 괴리가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할머니들을 단순히 피해자라거나 인권운동가라거나 하는 단편적인 모습으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소위 위안부 합의라는 것을 닭그네가 들고 왔을 때, 보상금이라는 명목으로 받으신 할머니들이 여럿 계십니다. 

그 분들을 뭐라고 할 자격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 그분들은 실제로 정의연 활동을 하지 않으신 분들이 많으시군요.

또한 실제로 정의연 활동을 하신 분들 사이에서는 많은 의견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의 뜻을 모아 지금껏 30여년이 넘게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것을 해산하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그리고 할머니들 주체로 스스로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씀도 덧붙이시더군요.

뭐 그럴 수 있겠지요. 저도 그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제가 정의연 식구(전 제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들이 아주 많이 힘든 시간을 보냈고 보낼 것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앞에서 할머니들끼리 막말을 퍼부우며 싸우는 모습을 보는 제가 불편함을 느꼈는데 실무자들은 오죽하겠습니까?

다른 이나, 다른 사람의 일을 두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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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는 정의연입장을 대변하는 할머니들 외에 다른 목소리는 철저히 무시당해왔다는 것과 과거 할머니들의 생활고가 심각했었다는거....

최근 2010년대에 들어와서야 정부와 지자체에서 생활지원금을 꽤 주기시작했지만 90년대 2000년대 중반까지도 정말 비참하게 사셨더라. 2004년 오마이뉴스 기사만 봐도 진주에 살던 한 위안부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장례비가 없어 쩔쩔매며 독자들의 후원을 요청하는 기사내용이 있었음. 그런 상황에서 일본에서 주는 돈 받으면 공창이라는 말까지 들었으니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장례비없어 '마지막 길'마저 서러운 위안부 할머니(2004년)

http://www.redian.org/archive/16760

할머니는 2004년 늦가을 침대에서 떨어져 대퇴부 골절을 입고 입원하셨다. 할머니는 다리를 고정시킨 채 옴짝달싹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냥 누워 계셨다. 내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끔찍한 상상이다. 이것은 제도적인 문제다. 위안부 할머니의 대부분이 가난하고 자식이 없으시다. 이 말은 사소한 사고나 병에도 결국 곁에서 보살펴줄 사람이 없어 비참하게 돌아가시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혼자 사는 팔순 위안부 할머니 병원비 걱정(2005년)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53933&CMPT_CD=SEARCH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93703&CMPT_CD=SEARCH
"배상 문제와 관련해서 당시 책임자였던 김종필과 박정희를 욕할 생각은 없다. 당시 받은 보상금 3억 달러를 경제 개발에 썼고, 그 혜택을 많은 사람이 받았다. 원래 징용 간 분들에게 드렸어야 했지만, 당시엔 경제가 어려워 어쩔 수 없었다고 하자. 하지만 지금은 1인당 GNP 2만달러 사회다. 그 돈을 토대로 우리가 먹고 살았으니 이제 그 돈을 할머니들에게 돌려줘야 하지 않나. 하지만 사정은 어떠한가. 원폭 피해자 전용 병원은커녕 관련 연구기관도 없다.

법적 문제는 끝났다. 일본 정부가 할 일이 있고, 우리가 할 일이 있다. 일본 정부는 공식 사과를 하고 왜곡 교과서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는 당시 받은 보상금을 할머니들에게 돌려드리는 일을 해야 한다. 세상에 할머니들이 돌아가시는데 장례비조차 없다는 게 말이 되나. 배상 문제에 있어선 우리한테 먼저 물어보자." (2007년기사)


http://m.ctnews.co.kr/15976

심미자(沈美子)씨는 한국 정부에서 한 달마다 나오는 쌀 1kg과 31,000원의 생활보조금, 그리고 그 외에 이렇게 자수를 놓아서 생계를 꾸리고 있다. ‘이 자수는 혼수용품으로 부탁 받은 것인데, 완성하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자수를 놓은 값은 1장에 32만원으로 실 값 등 재료비 등을 빼고 나면 고작 7,8만원밖에 남지 않는다고 한다.(1992년기사)



https://www.google.com/amp/s/m.yna.co.kr/amp/view/AKR19920504003200004

이들은 이날 마땅한 방한칸 없이 살고 있는 자신들을 위해 정부가 가장 적은 평수의 영구임대주택이라도 마련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표시했으며 그나마 보금자리로 삼아왔던 무허가창고마저 조만간 철거당할 위기에 놓여 있다는 晉모씨의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1992년기사)

-----> 진경팽 할머니 이야기인것 같은데 아시아여성기금 500만엔을 공식적으로 수령한 7명중 1인임. (비공식적으로는 61명이 수령) 솔직하게 얘기한 대가로 저 7명의 할머니들은 결국 정부에서 주는 3150만원의 지원금은 받지 못함. 당시 가장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쳐해 있으셨을걸로 추정되는데...

저런 할머니들 입장에서 맨날 자신들을 앞에 내세워 모금은 잔뜩해놓고 위안부 기념관인다 여성센터다 뭐다 심지어 해외의 단체들에게까지 지원하면서 정작 할머니들에게 밥 한끼 사주기 싫어하는 정대협이 어떻게 보였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지 않음?

심지어 이용수 할머니는 정대협과 수십년간 의견을 함께 한 사이였는데도 정대협의 저런 행태를 보고 결국에는 돌아섬. 2015년에 한 인터뷰에서 이미 그 기미를 보였더라.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466
매주 수요일이면 서울에 올라와 수요 시위에 참여했던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단체들에 대해 “맨날 박물관이나 짓고, 자기들끼리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일본이 협상을 하자는데 왜 안 해요? 문제 해결을 하려면 만나야죠. 만나지 않고 어떻게 해결이 되겠습니까. 정대협의 수요 시위도 무엇을 위해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건 처음도 없고 끝도 없이 무조건 ‘사죄하라’, ‘배상하라’고 하면서 집회 횟수만 채우면 된다는 식이에요. 회담이 있어도 단체 사람들끼리만 해요. 엄연히 피해자들이 있는데, 왜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지 모르겠어요.”

“사과는 언제든 일본한테 받겠지만, 정부가 일본에 앞서 우리에게 미리 배상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죽으면 무슨 소용 있나요. 생전에 배상을 받아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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