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 펠레가 거품이라는 선동글이 아래 올라왔길래 반박 한 번 해봄.
https://bleacherreport.com/articles/1099349-top-5-things-pele-does-not-want-you-to-know#slide5
1. 펠레가 속한 상파울루 주리그 수준
1970년 월드컵 당시 브라질 스쿼드 소속팀
플루미넨세 2명 플라멩구 1명 보타포구 3명(리우데자네이라주 리그) 6명
크루제이루 3명 아틀레티코 미네이루 1명 (미나스제라이스주 리그, 미네이랑의 비극 할 때 그 미네이랑) 4명
산토스 5명 파우메이라스 2명 포르투게자 1명 코린티안스 2명 상파울루 1명 (상파울루주 리그) 11명
그레미우 1명 (히우그란지두술주 리그) 1명
전체 22명 중 11명이 상파울루 주리그 출신
펠레가 뛰던 1959~1974년까지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팀의 출신 주리그
파우메이라스 6회 산토스 6회 (상파울루 주리그) 12회
바이아 1회 (바이아 주리그) 1회
크루제이루 1회 아틀레티코 미네이루 1회 (미나스제라이스주 리그) 2회
바스쿠 다가마 1회 플루미넨세 1회 (리우데자네이루주 리그) 2회
*상파울루, 코린티안스가 준우승 각각 2회, 1회 씩 했었음.
-> 종합해보면 브라질 국대 절반이 상파울루 주리그 출신, 브라질 전국리그 우승 다수 차지한게 상파울루 주리그 출신팀이란 점에서 보면 절대 단순한 양학리그가 아니란걸 알 수 있음
2. 펠레가 월드컵 우승을 버스로 했다?
우선 펠레의 월드컵 기록을 보자.
FIFA 월드컵 우승 3회: 1958, 1962, 1970
FIFA 월드컵 골든볼 1회: 1970
FIFA 월드컵 실버볼 1회: 1958
FIFA 월드컵 실버슈 1회: 1958
FIFA 월드컵 영 플레이어 상: 1958[105]
FIFA 월드컵 베스트 11 2회: 1958, 1970
FIFA 월드컵 통산 결승전 최다골 2경기 3골 (1958, 1970)
FIFA 월드컵 통산 결승전 최다 공격포인트 2경기 3골 3도움 (1958, 1970)
FIFA 월드컵 통산 최다 공격포인트 14경기 12골 10도움
FIFA 월드컵 통산 최다 도움 14경기 10도움 (1958, 1962, 1970)
FIFA 월드컵 통산 단일 대회 최다 도움 6경기 7도움 (1970)
FIFA 월드컵 통산 최연소 월드컵 해트트릭 (1958)
FIFA 월드컵 통산 최연소 우승 (1958)
다음은 펠레의 우승 당시 기여도를 보자
1958 FIFA 월드컵 우승
조별리그 1차전 오스트리아전 3-0 승 (부상으로 불참)
조별리그 2차전 잉글랜드전 0-0 무 (부상으로 불참)
조별리그 3차전 소련전 2-0 승 (1어시스트)
8강전 웨일스전 1-0 승 (1골)
준결승전 프랑스전 5-2 승 (3골)
결승전 스웨덴전 5-2 승 (2골 1어시스트)
종합: (4경기 6골 2도움 브라질의 16골 중 8개로 50% 기여)
1962 FIFA 월드컵 우승
조별리그 1차전 멕시코전 2-0 승 (1골 1어시스트)
조별리그 2차전 체코전 0-0 무 (경기 도중 부상)
조별리그 3차전 스페인전 2-1 승 (부상으로 불참)
8강전 잉글랜드전 3-1 승 (부상으로 불참)
준결승전 칠레전 4-2 승 (부상으로 불참)
결승전 체코전 3-1 승 (부상으로 불참)
종합: (2경기 1골 1도움 브라질의 14골 중 2개로 14.29% 기여)
1966 FIFA 월드컵 조별리그
조별리그 1차전 불가리아전 2-0 승 (1골, 경기 도중 부상)
조별리그 2차전 헝가리전 1-3 패 (부상으로 불참)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전 1-3 패 (경기 도중 모라이스의 백태클 맞고 부상)
종합: (2경기 1골 브라질의 4골 중 1개로 25% 기여)
1970 FIFA 월드컵 우승
조별리그 1차전 체코전 4-1 승 (1골 2어시스트)
조별리그 2차전 잉글랜드전 1-0 승 (1어시스트)
조별리그 3차전 루마니아전 3-2 승 (2골)
8강전 페루전 4-2 승 (1어시스트)
준결승전 우루과이전 3-1 승 (1어시스트)
결승전 이탈리아전 4-1 승 (1골 2어시스트)
종합: (6경기 4골 7도움 브라질의 19골 중 11개로 57.89% 기여)
종합: 14경기 출전 12골 10어시스트
제대로 나오기만 하면 스탯은 기본으로 정립했음. 월드컵 3회 우승이 버스 우승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음. 위 링크에 펠레가 득점왕 해본적 없다고 까는데 부상으로 제댛로 6경기 나온 것도 70년 밖에 없고 58년은 17살에 토너먼트에서만 6골 2어시 박아서 캐리 우승, 70년은 4골 7어시로 팀내 최다 공포 기록하며 우승한거임.
62년이 버스 우승이라고? 첫경기는 캐리해서 완전 버스는 아님. 그리고 그걸 빼더라도 월드컵 2개 이상 캐리 우승한건 역사상 펠레밖에 없음. 그리고 득점왕 못했다고 까면 득점왕한 해리 케인이 득점왕 못해본 베켄바워, 크루이프보다 위대하다는 말도 할 수 있지.
3. 펠레 시절에 오프사이드가 없었다고?
http://https://youtu.be/5W9Sw0pKUyo
90년 규정 개정 이전까지는 동일선 상에서 공 받아도 오프사이드로 간주. 그 이후부터는 동일선 상에서 공 받아도 괜찮음. 동일선상까지는 허용이 됨.
거기다 독일 월드컵 직전인 2006년에는 오프사이드 규정이 더욱더 완화되었음.
◇볼만 안 건드리면 오프사이드서 제외
최근 국제축구연맹(FIFA)은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더라도 공격에 관여하지 않는 선수에 대해서는 파울을 불지 않는 것으로 규정을 완화해 왔다.
하지만 이번 대회부터는 오프사이드 규정이 더욱 더 공격 팀에 어드밴티지를 주는 방향으로 적용된다.
공격에 직접 관여를 했더라도 볼만 건드리지 않으면 오프사이드 반칙에서 제외된다. 슈팅이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던 자기 편의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 골이 되더라도 이전과는 달리 공이 몸에만 맞지 않았다면 득점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ports/soccer/108298.html#csidxd59c4b63c1ccff39d8915706df4cf06
4. 점점 골 넣기 쉽게 바뀌는 축구 규칙들
1992년부터 골키퍼에게 백패스 하면 골키퍼가 손으로 잡는게 금지되었음. 골키퍼에게 백패스가 가능하면 수비가 볼처리가 더 쉬워져서 공격수에게 불리하게 작용
위에 말한 오프사이드 규정과도 관련이 있음. 흔히들 말하는 수비 조직력 때문에 골 넣기 더 쉽다는 말은 틀림
5. 선수에 대한 보호가 거의 없던 펠레 시절
1958년 축구 규정에 처음 생긴게 선수교체이나 의무는 아니었기에 월드컵을 포함한 대다수 축구판에서 선수교체 제도는 없었음.
1966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vs불가리아 전에서 펠레가 태클을 당하는 모습
태클이 너무나 당연하게 난무했지만 카드고 퇴장이고 없었다.
이 경기에서 펠레는 골을 넣었지만 부상을 당해 2차전을 결장한다.
그러나 펠레가 빠진 브라질은 다음 경기에서 헝가리에게 3-1 떡실신을 당하게 된다
급해진 브라질은 아직 부상에서 회복중이던 펠레를 3차전 vs포르투갈전에 선발로 뽑는다.
이 경기에서 펠레는 커리어 상 최악의 부상을 겪게 된다.
펠레를 가볍게 맞이해주는 포르투갈의 수비진들
펠레의 폼이 정상적이지 않았으나 여기까지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태클 중 하나인 모리아스의 2연속 백태클로 펠레는 새로운 부상을 입게된다.
다른 앵글
실려나가는 펠레
문제는 당시에 선수 교체제도는 오직 '부상당한 선수' 한정으로 교체가 가능했고, 그외의 경우는 용납하지 않았다. (거기에 결승전은 무슨 이유로도 교체가 허용되지 않았음)
그리고 그 부상당한 선수에 대한 판정은 심판이 했고, 심판이 생각하기에 뛸 수 있다고 여겨지면 부상당했어도 교체없이 뛰어야했다.
결국 심판은 펠레가 뛸 수 있다고 생각해 교체를 허락하지 않고, 펠레는 절뚝거린 채로 다시 필드에 들어와야 했다.
경기중에 절뚝거리는 펠레.
결국 경기는 포르투갈이 3-1로 승리하게 되고, 브라질은 조별광탈을 하게 된다.
빡친 펠레는 월드컵을 앞으로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하고, 국대도 2년간 뛰지 않는다.
제의 심각성을 느낀 FIFA는 다음 월드컵(1970 멕시코 월드컵) 부터 교체 제도 및 카드 제도를 도입할 것을 약속했고,
여기에 마음을 돌린 펠레는 1969년 다시 월드컵 멤버로 소집된다.
1958년 축구 규정에 처음 생긴게 선수교체이나 의무는 아니었기에 월드컵을 포함한 대다수 축구판에서 선수교체 제도는 없었음. 펠레 시절은 선수교체 제도가 없었기에 북한의 1966년 월드컵 돌풍도 이탈리아의 주장 불가렐리가 부상으로 실려나가고 10명으로 뛴 이탈리아 상대로 이길 수 있던 배경이었음. 포르투갈도 1966년 월드컵 때 펠레를 우선 부상시키고 3-1로 가볍게 이기고 그 월드컵 4강까지 올라감. 1970년 월드컵에서야 비로서 생긴 제도임. 심지어 1960년대 한일전에선 이런 일화까지 있음
1960~1970년대 축구 해설위원을 맡았던 이의재 전 대한축구협회 이사는 "1960년대 한일전만 해도 한국 선수들이 출중한 일본 골키퍼를 내보내기 위해 코너킥 상황에서 거친 파울로 골키퍼를 다치게 한 경우도 있었다"면서 “당시 이 같은 제도적 허점 탓에 힘과 거친 플레이도 곧 전술로 여겨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98월드컵 때 하석주의 퇴장으로 잘 알려진 백태클=퇴장 규정도 1998 월드컵 때부터 도입된 제도. 그 이전엔 잘해봐야 경고 정도 주어지고 말았던 규정.
출처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19980327/7332815/1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501081659507708
https://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01112970268#Redyho
마지막에 팀빨로 우승한거라는 주장에는 그런 식이면 메시의 트레블 2회도 월드컵 우승하던 스페인 멤버, 수아레스, 네이마르랑 같이 뛰면서 한거고, 호날두의 챔스 3연패도 크카모 빨로 우승한거네?
그리고 펠레가 너무 오래전 사람이라 그런지, 본 사람이 많이 없지만, 펠레를 직접 본 사람들이 하는 말 들어보면 아니란거 알 수 있다.
Q.역사상 최고는 누구인가?
첫번째는 펠레이다. 두번째는 마라도나. 그리고 메시는 마라도나와 동급이다.
-안토니오 라틴 (보카주니어스의 레전드로 1966 월드컵 아르헨티나 주장)
Q:당신은 펠레와 마라도나를 대면했고, 이제 메시를 보았습니다. 누가 최고입니까?
A:셋 다 거의 같은 레벨에,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펠레는 엄청났고, 한 단계 위에있다. 그는 모든 것을 가졌다.
-오마르 라로사(78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의 우승 멤버 위너)-
Q:누가 가장 위대한 선수입니까?
A:펠레, 마라도나, 메시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세명의 선수이다. 아마 펠레가 가장 완전한 선수였을 것이다. 그의 스킬과 더불어, 그는 점프하고 헤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르도 보치니(72~91년까지 Atl?tico Independiente에서 뛴 선수로, 5번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우승했고 말년에 86월드컵을 들었다. 남미 올해의 선수 수상자이며, 마라도나의 유소년기 우상이라고 함.)-
"호날두와 메시 모두 특별한 개성을 가진 선수들이다. 하지만 펠레가 역사상 최고였다."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레알마드리드의 챔스 5연패 주연이자 1947년 아르헨티나의 코파아메리카 우승 멤버-
Q:역대 탑5와 최고는?
A:역대 탑5는 펠레, 마라도나, 디 스테파노, 메시 그리고 크루이프. 그리고 그중 최고라... 순서를 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굳이 말하자면 펠레가 최고였다. 그는 이 세상 선수가 아니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펙타클한 플레이어였고, 아직도 1970년 브라질은 내가 본 최고의 팀이였다.
-메노티 (1978년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고 마라도나를 발굴해낸 감독)-
"역대 최고의 선수는 펠레, 마라도나, 크루이프다. 만약 월드컵에서 우승하면 메시도 이 반열에 들 것이다."
-빌라르도 (1986년 월드컵 우승, 1990 월드컵 준우승을 이끈 아르헨티나 감독)
지금 그(메시)는 세계 최고의 선수이며, 그의 선수생활 내내 그랬다. 그러나 역대 최고는 펠레다. 나는 펠레와 같은 선수를 본 적이 없다. 나는 그가 뉴욕 코스모스에 있을때 같이 뛰었는데, 그에게 공을 주면 그가 너무 빨라서 다신 볼 수 없었다. 펠레는 모든 것이 본능이었다.
-프란츠 베켄바우어 (독일과 뮌헨 레전드로 선수로는 74월드컵 우승, 감독으로는 90월드컵 우승을 이끔)-
나는 지금의 리오넬 메시보다도 뛰어난 선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펠레다. 피치 위에서 그는 양발을 모두 사용했다. 그는 그의 왼발이 위험한만큼 오른발도 위협적이었다. 그는 공중에서조차 강력했다. 그리고 많은 찬스들을 창조해냈다.
-잔니 리베라(유로 68 우승, 70월드컵 준우승을 이끈 이탈리아 공격수) -
출처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football_new6&no=6063415
왜 뜬금없이??
검색하다 해축갤에 묻힌 좋은글이라 그대로 퍼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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