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뒤집어야 산다 ①유소년 교육 시스템
“아이들에게 절대 소리치지 말라” 협회 치침에도
성적 압박에 일부 지도자는 고함·욕설 아랑곳 않아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2024 전국 초등 축구리그에 참가한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야, 인마, 코미디 하냐? 공도 못 봐?” (5월20일 효창운동장)
“혼자 하니? 네 문제가 그거야 이 XX야!” (5월27일 효창운동장)
최근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2024 전국 초등 저학년(5학년 이하) 축구리그 서울권역 경기 도중 나온 일부 지도자들의 듣기 거북한 발언이다. 아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거친 말을 한 지도자는 전반 뒤 휴식시간에도 아이들을 세워놓고 훈계했다. 고함지르기, 욕설하기, 감정 드러내기 등은 유소년 지도자의 금기다. C, D급 지도자 자격증을 딸 때, 교육과정에서 귀가 닳도록 듣는 말이다. 현장에서는 달라진다.
걷어내기만 한 선수는 대표팀 돼도 걷어내기만
대한축구협회가 유소년 경기에서 일절 간섭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겪을 트라우마 때문이다. 한 축구인은 “지도자가 급한 상황에서 볼 걷어내라고 소리치면, 이 아이는 A대표팀에 가서도 걷어내기만 한다. 골 먹더라도 시도 좋았다고 말해주고, 혼내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감을 갖고 성장한다”고 말했다
지시와 이행이 반복되면 후유증은 청소년기에 찾아온다. 한겨레 분데스리가 통신원인 마쿠스 한은 “한국의 4~6학년 아이들을 이끌고 유럽 유소년 캠프에 가면 우리 아이들이 압도적으로 이긴다. 3년 뒤 다시 나가서 붙으면 이번엔 유럽 유소년팀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기교에서 앞섰을지 몰라도, 기본기 교육과 시스템의 차이가 불러온 역전 현상이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유소년이라도 1년 단위의 연령별 리그가 이뤄지고, 그 안에서도 수준이 나뉘어 강대강 대결이 이뤄진다. 때로는 월반해서 경쟁하기 때문에 매 경기에서 자신의 에너지를 “110%, 120% 발휘해야 살아남는”(마쿠스 한) 고강도 단련이 이뤄진다.
한국 유소년 3년 지나면 유럽에 상대 안 돼
반면 한국은 12살, 15살, 18살 이하 등 3년 터울로 유스팀이 구성돼 중학 1~2학년이 뛰기 어렵고, 상대하는 팀의 전력 기복이 심해 집중력이 떨어진다. 성적 압박을 받는 지도자 아래서 조련된 아이들은 나중에 조로현상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대한축구협회 누리집의 연령별 대표팀 전적 가운데, 한-일전을 보자. 지난해 한국의 U-14 대표팀은 일본과 4차례 만나 2승1무1패의 우위를 보였다. 하지만 한국 U-17 대표팀은 2023년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패배했고(0-3), 동아시아 U-15 챔피언십에서도 일본에 0-4로 졌다. 23살 이하의 올림픽 대표팀이 올해 카타르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일본을 1-0으로 이겼지만, 고비인 8강에서 탈락했고, 일본이 대회 우승을 차지한 것은 벌어진 실력 차를 보여준다.
대한축구협회의 유소년 교육 지침은 다른 종목에 비해 틀이 잡혀 있지만 갈길은 멀다.
최성환 대한축구협회 전임강사는 온라인 보수교육 강좌에서 “유럽의 유소년팀을 지켜봤지만, 한국 지도자들이 열성적이고, 기술적으로 잘 가르친다. 뒤지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효창운동장에서 1주일 단위로 지켜본 유소년 축구 현장에서도 그런 부분을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지도자가 선수들을 격려하며 소통하려고 애썼다.
더 잘할 여지는 분명히 있다. 한 코치는 골키퍼를 개인 지도하면서 “공 끝까지 안 보고 하면 계속한다”며 윽박질렀는데, 아이가 ‘헉헉’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관중석까지 들렸다. 아이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뭐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라며 질책하는 지도자도 있었다.
실수 안하면 절대 배울 수 없는 게 빌드업과 득점
백영철 대한축구협회 전임강사는 “유소년이라도 혼날 때가 있다. 운동장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등 태도나 열정에 문제가 있다면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기능 부족에 대해서는 지도자가 절대 화내면 안 된다”고 했다. “아이들은 실수를 통해서 배우고, 빌드업과 득점 과정에서는 실수하지 않고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경험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유소년 축구 발전을 위해 애쓴 마이클 뮐러 대한축구협회 전임 전력강화위원장은 지난 5년간 유소년 팀 육성의 초점을 팀이 아니라 ‘개인’에 두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성적 압박 탓인지 지도자들은 유소년 때부터 덩치 좋은 아이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15~18살에 이르면 체격은 평균에 수렴함에도, 당장 성과에 치중하면서 빼빼 마르고 키는 작지만 머리 좋은 아이들이 배제되는 일이 생긴다. 그것이 “축구 선수 자원의 70%가 된다”는 말은 충격적이다. 그러다 보니 다양성도 떨어진다. 마쿠스 한은 “유럽의 스카우트가 한국에 오면, ‘모든 팀의 10번 선수가 다 똑같다’라는 말을 한다”고 전했는데, 특성 없는 한국 축구의 단면을 보여준다.
외국 스카우트 “모든 팀 10번이 다 똑 같다”
대한축구협회는 2022년 기술 발전 세부 전략을 완성하면서 “팀 중심의 결과 지향이 아니라, 개인 중심의 선수 성장으로 유소년 지도 방법을 추구한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한 축구인은 “한국 유소년들은 포지션별 원리를 단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다. 그러니 중학교 감독은 ‘초등학교에서 뭐 배웠니’라고, 고교에서는 ‘너 언제부터 볼 찼니’라고, 대학이나 프로 감독은 ‘10년 넘게 운동하면서 이것도 모르니’라고 핀잔한다. 이런 엉터리 구조에서 연령별로 우수 선수들이 나오는 것은 한국 선수들의 천재성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각급 대표팀이 현재의 성적을 내는 것도 기적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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