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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도 달리던 '국가대표 풀백' 오범석이 지금 이 순간 '은퇴를 결정한 이유'

드루와 0

 




(베스트 일레븐=용산)

"19년의 프로 선수 생활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저는 은퇴합니다."

지난 11월 24일, 한 시대를 누빈 '국가대표 풀백' 오범석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제 그만 그라운드를 떠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1984년생으로 '롱런의 아이콘'이었던 그가 간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은 슬픔과 고마움이 뒤섞인 뜨거운 인사를 쏟아냈다.

오범석의 커리어 마지막 경기는 12월 4일 벌어진 하나원큐 K리그1 2021 38R 포항 스틸러스-FC 서울전이었다. 전반 32분, 오범석은 자신의 프로 데뷔연도 등번호를 의미하는 그 순간에, 선수 인생을 시작했던 포항 스틸야드에서 만인의 박수를 받으며 멋지게 떠나갔다. 뭉클하고 뜻 깊은 마무리, 본인이 항상 꿈꿔왔던 '엔딩 컷'이었다.

<베스트 일레븐>은 올해가 가기 전 한 번 더 오범석을 만나기로 했다. 19년간 켜켜이 쌓인 감정이나 스토리, 향후 계획 등이 무척 궁금했다. 오범석은, 선수라고 불릴 날이 얼마 안 남았을 인터뷰 속에서, 자신의 지난 조각들을 차곡차곡 주워 담고 정리했다. 19년이나 우리와 함께했던 만큼, 오범석이 끄르는 이야기보따리들은 속이 꽉 차 있었다.

대화의 용량이 커, 기사는 1편과 2편으로 나눈다.


 

 



b11: 은퇴하고 며칠이 흘렀습니다. 기분이 어떤가요?

"내려놓은 거 같아요. 예년이면 훈련을 했는데, 이번에는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몸을 내려놨죠. 운동을 안 하니까 살도 조금 찐 거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아이들 학교 보내고 조깅을 좀 뛰고 왔습니다. 아직 실감은 안 나네요. 휴가 보내는 기분이랄까요? 1월 되면 다시 훈련에 들어가야 할 것만 같아요."

b11: 포항으로 마지막 이적을 결심할 당시, 은퇴를 하겠다는 마음이 있었나요?

"포항을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왔어요. 이적이 결정 났을 때, 이곳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와이프와도 미리 이야기를 나눴답니다. 여기서 뛰다가 끝내는 게, 나한테 가장 좋을 거 같다고요."

b11: 더 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은퇴를 결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머리로는 '여기서 주고 얼른 저기 가서 다시 받아야겠다'가 됩니다. 그런데 따라가질 못했어요. 수비를 할 때도 상대가 오른쪽으로 칠 걸 아는 데도 못 쫓아갑니다. '몸의 반응'이 느려진 거죠. 스스로 인정을 했습니다. 나이든 선수들은 경험을 이용해 더 할 수도 있지만, 그 레벨에서 무리하게 끌고 가는 건 제 성에 차지 않았어요. 경험으로만 버티는 경기력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국 질질 끌기보다는 '여기서 마무리해야겠다'라고 결심했습니다."



 



b11: 커리어에서 트로피가 없습니다. 올해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이 유독 속상했을 거 같아요.

"트로피가 없는 커리어, 솔직히 미련은 있어요. 준우승만 했어요. K리그, FA컵,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까지…. 아쉽지만, 이것도 제 복이겠죠 뭐. 그래서 올해 ACL은 정말 우승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상대팀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해내고 싶었죠. 생각했던 거 보다 우리(포항)가 못해서 아쉽습니다. 우리 축구를 하지 못했어요."

b11: 은퇴하던 그날, 여전히 생생한 기억이겠죠?

"제가 성격이 무던하고, 반응도 잘 안하지만, 그래도 다 기억합니다. 여느 때와 똑같았어요. 덤덤하게 일어나서 경기장으로 갔어요. 그날 30분 정도를 뛰었네요. 마지막에는 웃고 끝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교체로 나갈 때도 울지 않고 웃었던 거 같아요. 모두가 제가 나가는 걸 기다려줄 때는 존중을 받는 느낌이었어요. 상상했던 은퇴식 장면이었어요. '내가 그래도 열심히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정해둔 게 있었습니다. '시즌 끝나고 팀이 없어서 떠밀리듯이 은퇴하진 말자. 내가 결정을 해서 떠나자.' 감사하게도 그렇게 됐습니다."

b11: SNS를 통해 은퇴를 알렸습니다. 장문이라 적는 데도 오래 걸렸을 듯해요.

"좀 걸렸어요. 사실 ACL에서 우승하고 더 멋지게 떠나고 싶었는데, 기쁘지 않은 상태에서 소식을 전하게 됐죠. 막상 적으려니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다 적는 데 2시간은 걸린 거 같아요. 직접 한 자 한 자 다 썼어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ACL 결승이 끝난 뒤 방에서 혼자 그걸 하고 있었답니다."

b11: 마지막 경기, 오범석의 32번 유니폼이 걸려있더라고요. 보았나요?

"그거 골동품인데 진짜… 저도 안 가지고 있는데 그걸 갖고 있다니…. 뭉클하고 짠했어요."



 



b11: '소문 난 사랑꾼'입니다. 은퇴를 하며 와이프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았을 거 같아요.

"와이프는 어릴 때 저를 만났어요. 어릴 때 결혼도 했죠. 우리 와이프, 엄청 여린사람이에요. 나 만나고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남편이랑 떨어진 시간도 많고, 애들도 혼자 봐야 하고, 희생을 정말 많이 했어요. 항상 미안하고 고마워요. 그래서 저는 밖에서 사람을 잘 안 만나요. 특히 저녁에는 되도록 와이프와 가족에게만 시간을 쏟으려 해요."

b11: 혹시 아들도 축구 선수가 될 가능성이 있나요?

"좀 아닌 거 같아서 그만하고 있습니다. 제 판단으로 그만하고 있어요(웃음). 재능이 있는 거 같진 않아요. 웬만큼은 하는데 제가 봤을 때 그 정도로는…. 우리 아들은 농구나 공부처럼 손으로 하는 걸 잘해요. 그래서 제가 골키퍼를 하라고 권유해본 적은 있어요. 그런데 그건 또 싫대요. (포항의 강현무처럼 골키퍼도 멋있지 않나요?) 현무요? 현무는… 안 멋있죠.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b11: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부여한 공로상, 뜻 깊었을 듯합니다.

"정말 감사했어요. K리그에서 오래 뛰며 이런 상을 받을 수 있어 영광입니다. 은퇴한 사람들이 저만 있는 건 아니었잖아요. 정말로, 정말로 영광입니다."

b11: 혹시 K리그 역대 출장 기록이 20위(397경기)인 거 알고 있나요?

"몰랐는데, 20위인가요? 나쁘진 않네요(웃음). 사실 더 하고 싶었는데, 400경기 채우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있긴 해요. 그래도 남들에 비해서는 오래했다고 생각합니다."

b11: K리그에서 가장 오래 뛴 포항, 의미가 남다를 거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였죠. 포항 유스로 갔습니다. 그때부터 인생이 많이 달라졌어요. 축구 명문에 들어가게 됐고, 포항 2년 차에 기회가 주어져서 경기를 뛰기 시작했고, 이곳에서 국가대표도 됐어요.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공간이죠."



 



b11: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됐던 순간도 기억하나요?

"2004년에 K리그에서 준우승을 하고, 2005년 1월에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뽑혔어요. 그때는 2G 폰이었잖아요. 막 이렇게 접히는 거. 그 폰에 자고 일어나니까 전화랑 문자가 수백 통이 와 있는 겁니다. 내용을 봤는데, 온통 '국가대표 축하한다'였어요. 정말 좋았죠. 부모님이 특히 좋아하셨어요. 그때 부모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던 거도 기억합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올라가는 건 어려운데, 내려가는 건 금방이다. 이 말을 기억하며 선수 생활을 해라.'"

b11: 오범석의 '최애 넘버'가 14번이 된 이유가 있나요?

"그냥 남아서 골랐어요. 그때는 나이가 어려서 선택권이 많지 않았어요(웃음). 제 나이에서 가장 좋은 번호가 그나마 앞 번호인 14번이었어요. 그게 최상이었답니다. 그래도 그 뒤로 14번이 계속 좋아졌어요."

b11: 여러 포지션을 소화한 '멀티맨'이었습니다. 어디가 가장 편했어요?

"그래도 가장 잘했던 라이트백이 아닐까요? 경기력도 잘 나오고, 그걸로 국가대표도 했고, 유럽도 진출했어요. 멀티 플레이어가 되기 위한 노력은 따로 하진 않았어요. 머릿속에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정도? 크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여러 포지션을 봐도 잘했기 때문이죠. 어렵지 않았습니다!"

b11: 함께했던 최고의 동료, 1명 꼽을 수 있나요?

"이건 말 못하겠어요. 애들이 삐질 거 같아요. 친구들이 많아서 이건 진짜 답변하지 못하겠어요(웃음)."

b11: 포항 플레이코치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김기동 감독님과 같이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가족과 떨어져 산지가 오래됐어요. 그 사이에 첫째는 벌써 6학년에 둘째는 4학년. 애들 크는 거 잘 봐주지도 못했어요. 와이프랑 시간 오래 못 보낸 건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서 감독님께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전했습니다. 이해해주셨어요. 이건 제가 먼저 결정하고 와이프에게 말했어요. 단 1년이라도 가족과 같이 있겠다고, 애들이랑 시간도 보내고 싶다고요. A급 라이선스를 따뒀듯, 추후에 지도자 생각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만큼은 아무 생각이 없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은퇴하고 코치를 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②편에서 계속: 러시아·메시·아르샤빈·콜러·손흥민?… 오범석이 푸는 '19년 묵은 이야기보따리'
 

기사제공 베스트일레븐

조남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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