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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 인사이드] ‘넘사벽 탄력’ 보여줬던 차재영, 그는 여전히 농구를 사랑하고 있다

드루와 0

 

 

 


점프력 하나만큼은 KBL 역대급이었다. 그러나 그 점프력은 독이 됐다. 무릎에 무리가 갔고, 역대급 점프력을 지녔던 선수는 만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은퇴했다.
그러나 농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특히, 자신이 몸담았던 한국 농구를 향한 애정은 컸다. 그래서 그는 한국 농구의 근간인 동호인과 유소년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JYB스포츠농구교실의 대표가 된 차재영의 이야기다.



 


숨겨진 푸른 피
차재영은 2008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5순위로 서울 삼성에 입단했다. 하승진-김민수(경희대 코치)-윤호영(원주 DB)-강병현(창원 LG 전력분석원) 등 기라성 같은 멤버와 함께 높은 순번에 포진했다.
2008~2009 시즌에 데뷔한 차재영은 2014~2015 시즌까지 삼성에서만 뛰었다. 삼성에서만 252경기 출전. 비록 삼성에서 우승을 거둔 건 아니었지만, 삼성의 푸른 유니폼이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차재영은 ‘원 클럽 플레이어’로 KBL에 남고 싶었다. ‘푸른 피의 사나이’로 삼성의 역사에 남고 싶었다. 그러나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2014~2015 시즌 종료 후 FA(자유계약)가 됐고, 복합적인 이유로 삼성을 떠났기 때문이다.

2008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5순위로 서울 삼성에 지명됐습니다.
(하)승진이와 (김)민수, (윤)호영이, (강)병현이 등 좋은 선수들과 드래프트에 함께 나왔습니다. 4명 모두 성인대표팀에서 많이 뛰어본 친구들이었죠.
개인적으로 순번은 크게 궁금하지 않았어요. ‘내가 어느 팀에 갈까?’라는 생각이 컸죠.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에, 삼성에서 저를 불러주셨어요. 너무 좋았어요.(웃음) 삼성에서도 반갑게 맞아주시고, 환영도 격렬하게 해주셨어요. 또,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이규섭 선배님(전 서울 삼성 수석코치)께서 계셔서, 적응하는데 크게 문제없었던 것 같아요.
데뷔 시즌부터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습니다. 차재영 선수는 당시 핵심 식스맨이었는데요.
(차재영은 2008~2009 정규리그에서 50경기 평균 16분 3초를 뛰었고, 6.2점 1.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하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6경기 평균 20분 59초를 소화했다. 중요한 경기일수록, 차재영의 존재감이 강했다)

질문해주신 대로, 첫 시즌부터 운 좋게 챔피언 결정전에 갔어요. 이상민 전 감독님이나 강혁 코치님(현 대구 한국가스공사 코치), (이)규섭이형과 (이)정석이형(현 용산중 코치) 등 노련한 선수들이 많았어요. 테렌스 레더와 애런 헤인즈로 이뤄진 외국 선수 조합도 탄탄했죠.
안준호 감독님께서 저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알려주셨습니다. 팀의 활력소가 되길 원하셨죠. 그래서 저는 상대 팀의 빠른 선수나 공격력 좋은 선수들을 수비했어요. 추승균 해설위원님(SPOTV)과 (전)태풍이형도 막았던 기억이 나요. 잘하는 선수를 막다 보니 좀 더 많이 뛰어야 했고,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웃음)
2010~2011 시즌 종료 후 군에 입대했습니다. 그렇지만 군 제대 후, 삼성도 차재영 선수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입대 전만 해도, 노련한 형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제대 후 노련했던 형들의 나이가 더 많아졌어요.(웃음) 팀 전체가 젊은 선수들로 바뀌는 시기였죠.
어느 팀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맏형-중간층-어린 선수들의 3박자가 맞아야 합니다. 신구 조화가 잘 이뤄져야 해요. 그렇지만 그게 잘 안 됐던 것 같아요. 저도 중간 역할을 잘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팀은 계속 졌고, 패배 의식도 쌓였어요. 지금도 많이 아쉬워요.
2014~2015 시즌 종료 후 FA가 됐습니다. 그렇지만 삼성이 아닌 전자랜드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는데요.
무릎 부상을 고질적으로 안고 있었습니다. 은퇴를 할지 더 뛰어야 할지 고민했어요. 팀에서도 제 거취를 고민했고요.
그렇지만 저희 팀도 멤버가 달라졌어요. 팀 컬러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저와 계약을 포기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전자랜드가 저에게 기회를 줘서, 사인 앤 트레이드로 전자랜드 유니폼을 입었어요.



 


기로(岐路)
했던 일을 계속 할 수도,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할 수도 없다. 인생을 사는 모두가 그렇다. 그래서 사람들 모두 선택의 기로(岐路)에 놓인다.
차재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운동 능력이 좋은 차재영이었지만, 무릎에 늘 통증을 안고 있었다. 2014~2015 시즌 종료 후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은퇴를 고려했다. 하지만 인천 전자랜드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렇지만 차재영의 무릎은 나아지지 않았다. 더 악화됐다. 2015~2016 시즌 종료 후 은퇴를 결정했다. 전자랜드와의 계약 기간이 1년 남았지만, 차재영은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

2014~2015 시즌 종료 후 인천 전자랜드로 이적했습니다. 삼성과는 어떤 게 달랐나요?
분위기 차이가 아무래도 있었어요. 유도훈 감독님께서 완벽을 추구하시다 보니, 훈련 때 더 집중했어요. 훈련량도 많았고요. 훈련을 따라가는 게 쉽지 않았어요.(웃음)
그렇지만 정도 많으시고, 선수들을 먼저 생각하셨어요. 선수들 간에도 끈끈함이 있었고요. 그래서 팀이 하나로 더 잘 뭉쳤던 것 같아요.
전자랜드에서의 첫 시즌(2015~2016)은 좋지 않았습니다. 13경기 평균 6분 4초 밖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팀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어요. 선택의 기로에 놓였죠. 그리고 은퇴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돌이켜보면, 2014~2015 시즌 끝나고 은퇴하는 게 맞았던 것 같아요. 몸도 좋지 않은데, 굳이 더 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웃음)
말씀하신 대로, 2015~2016 종료 후 은퇴했습니다. 전자랜드와 계약 기간이 1년 남아있었는데요. 무릎 때문이셨나요?
맞습니다. 그래서 1년을 더 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빨리 은퇴해서,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준비했어요.
친정 팀에서 은퇴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쉽지 않으셨나요?
그런 아쉬움이 많아요. 하지만 전자랜드에서 은퇴한 것도 나쁘지 않았어요. 전자랜드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거든요.



 


하고 싶은 일
차재영은 너무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미련은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차재영이 하고 싶었던 일.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농구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작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면, 어떤 고생도 감수했다.

은퇴 직후에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쉬기도 하고, 여행도 다녔습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나니까, 재미없더라고요.(웃음) 성격이 그래서 그런지, 마냥 못 쉬겠더라고요. 하고 싶은 일들도 생겼고요.
어떤 걸 하고 싶으셨어요?
제가 아이들을 좋아해요. 아이들에게 농구를 가르치고 싶었어요. 또, 대학교 전공(체육교육학과)을 살려보고 싶었어요. 체육 선생님을 꿈꿨죠.
교사가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은퇴를 하고 나면, 경력이 단절돼요. 프로 선수로서 농구만 했기 때문에, 경력이 농구 밖에 없어요. 농구 외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은퇴를 하고 난 후, 농구 관련 자격증을 준비했습니다. 자격증을 취득한 후, 이것저것 다했어요. 기간제 교사나 시간 강사 등 여러 일들을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체육 쪽에서는 경력 없는 선생님들을 잘 안 뽑거든요. 처음에 힘들었지만, 조금씩 나아졌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장기 기간제 교사도 할 수 있었고요.
정규직 교사도 고려하셨을 것 같아요.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정규직 교사가 되려면, 시험 공부에 올인해야 해요. 결혼하고 나서는 더욱 쉽지 않은 일이었죠.(웃음) 공부에 몰두하는 건, 가장으로서 리스크가 컸거든요.



 


BASKETBALL
선수 생활을 마친 차재영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꽤 행복한 인생을 사는 듯했다. 하지만 인생의 틀이 바뀐 건 아니다. 차재영의 인생 기반은 여전히 ‘농구’다. 그런 이유로, 농구를 좋아하는 동호인들 그리고 농구를 좋아하는 어린 친구들과 함께 코트에서 땀 흘리고 있다.
‘농구’는 차재영에게 모든 것이다. 차재영 스스로도 인정했다. 그 후 자신의 농구 인생을 돌아봤다.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표현은 그렇지 않았다.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려서 그런지, 더 많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인터뷰 종료 후에도 미세한 여운이 남았다.

3X3 선수로도 뛰셨습니다. 5대5와는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은퇴 후 지인들과 동호회 농구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3X3에도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살도 찌고 운동을 안 하다가 3X3을 하다 보니, 더 어려웠어요. 그저 건강해져야 한다는 의미로 했던 것 같아요.(웃음)
2021년부터 JYB스포츠농구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1년 6월에 오픈했습니다. 개인 사업이다 보니, 책임감이 많이 생겼어요. 그렇지만 제 연고지가 아닌 곳이라,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농구 교실이 있는 평택은 아직 농구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어요. 동호인 농구와 유소년 농구 모두 그런 것 같아요. 농구 인구를 더 많이 유치하고, 유소년 엘리트 선수들도 많이 육성하고 싶어요. 평택의 농구를 활성화시키고 싶어요.
하지만 초등학교에 가면, 학급 수가 준 게 보여요. 어린 아이들이 줄어들었다는 거죠. 유소년부터 환경 형성이 이뤄져야, 농구 인기가 살아날 수 있는데... 그래서 어린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농구의 재미를 알려주고 싶어요.
JYB스포츠농구교실만의 차별화된 요소가 있을까요?
농구교실을 운영하기 위해, 여러 농구교실을 많이 검색했습니다. 그런데 냉정하게 봤을 때, 선수 출신이 농구 교실을 직접 운영하는 건 손에 꼽더라고요. 그런 이유로, 저 같은 농구 전문 인력이 직접 운영하고 직접 가르치는 걸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강사 고용 없이’라는 문구를 덧붙였다)
앞서 이야기했듯, 아이들에게는 즐겁게 농구하는 걸 강조하고 있습니다. 틀에 박힌 커리큘럼보다, 놀이 형태로 농구에 적응하도록 하는 거죠. 엘리트 선수들처럼 가르치면, 흥미를 느끼기 어렵거든요. 이건 아마 대부분의 농구 교실이 그럴 거예요.
다만, 선수반에 들어간 아이들은 커리큘럼에 차별화를 줘야 합니다. 기본기와 나쁜 습관들을 짚어줘야 해요. 어릴 때부터 짚어줘야, 뛰어난 농구 선수로 성장할 수 있거든요.
동호인들과 유소년 선수들의 눈높이를 맞춰야 합니다. 프로의 눈높이로 오랜 시간 생활했던 차재영에게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먼저 저희 교실에 계신 동호회 분들 중 8~90%가 기초부터 배우길 원합니다. 기본기를 배워야 농구를 잘할 수 있다는 걸 아세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기본기 위주로 수업을 하면, 동호인들은 오래 다니지 못하시더라고요.(웃음)
왜요?
재미가 없으니까요.(웃음) 그렇기 때문에, 기본기와 재미의 경계점을 잘 맞춰야 해요. 그래서 실질적으로 사용 가능한 기술을 알려드리고 있어요. 그렇게 해야, 동호인 분들께서 흥미를 느끼실 수 있거든요.
유소년 선수들도 비슷해요. 배웠던 기술을 잘 써먹을 수 있도록, 배웠던 기술 속에서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제일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농구’는 차재영에게 여전히 소중한 의미 같아요.
농구 골대가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요. 농구 하는 애들을 보면, 가르쳐주고 싶어요. 농구하는 애들이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요. 진부한 표현이지만, ‘농구’는 제 인생의 전부가 됐어요.(웃음)
마지막으로 ‘차재영의 농구 인생’을 한 번 돌아봐주세요.
저희 센터에 오시는 분들도 동호회 농구를 하셨던 분들도 저를 많이 기억해주세요. 대부분이 “덩크 멋있었어요”라고 하세요.(웃음) 그만큼 제 덩크가 기억에 남았다고 생각해요. 잠시나마 화려했던 플레이를 보여줬던 게, 저 개인적으로는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가끔씩 예전 플레이를 봐요. 얼굴부터 풋풋했더라고요.(웃음) 회상에 잠길 때도 있고, 재미있기도 해요.(웃음) 다만, 조금 더 잘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커요.
또, 어느 날 와이프가 갑자기 그러더라고요. “다음 생에 태어나면, 다시 농구할 거야?”라고요.(웃음) 생각을 해봤는데, 저는 농구를 할 것 같아요. 농구가 아니어도, 스포츠인이 됐을 거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모든 구기 종목을 좋아했거든요.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웃음)

사진 제공 = KBL(본문 2~3번째 사진)-차재영(본문 4~5번째 사진)

기사제공 바스켓코리아

 

손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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