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고국 팬들 앞에서 자신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를 것이라는 기대감은 무너졌다. 잦은 장거리 이동 속에서 자신의 컨디션을 100%로 올리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시범경기 성적이 좋지 않았다. 샌디에이고는 고우석(26‧샌디에이고)에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봤다. 하지만 구단은 고우석을 잊지 않고 있다. 어느 시점에는 반드시 팀에 필요한 선수가 될 것으로 본다. 현지 언론의 보도 또한 이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고우석은 20일 발표된 샌디에이고의 개막 26인 로스터에서 제외됐다. 샌디에이고는 20일과 2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리는 '2024 메이저리그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LA 다저스와 시즌 개막 2연전에 참가하기 위해 총 31명의 선수를 데리고 서울에 왔다. 26인 로스터 선수에 5명의 택시 스쿼드가 포함된 선수단이었다. 31명의 선수 중 26명을 골라야 했는데 고우석은 탈락한 5명의 명단 중 하나로 포함됐다. 충격적인 일이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샌디에이고와 2년 보장 450만 달러, 2+1년 최대 940만 달러에 계약한 고우석은 당초 샌디에이고 불펜 필승조의 일원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실적은 확실했다. KBO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였다. 지난해 부진하기는 했지만 오랜 기간 고우석의 활약을 지켜본 샌디에이고는 아직 젊은 나이고 기량이 있는 만큼 반등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일정에 발목이 잡혔다. 고우석이 100% 컨디션을 만들 수 없는 여건이었다.
고우석의 잘못은 아니었다. 포스팅이 마감 직전까지 가면서 계약이 상대적으로 늦어졌다. 미국에 가 계약을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비자 발급이 늦어졌다. 빨리 비자를 받고 최대한 일찍 미국으로 넘어가 적응 훈련을 하려고 했던 고우석 측의 계획이 틀어졌다. 이 또한 고우석이나 고우석 에이전시의 잘못은 아니었다. 비자가 늦게 나오는 데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결국 고우석은 당초 구상보다 늦은 2월 9일에나 출국했다. 애리조나에 가 몸을 만들 시간이 촉박했다.
구단도 이를 알고 있었다. 고우석의 시범경기 등판을 뒤로 미루면서 불펜 피칭과 라이브피칭의 과정을 단계적으로 밟게 했다. 하지만 시범경기 내내 들쭉날쭉한 컨디션이 이어졌다. 구속 자체는 갈수록 올라오기는 했으나 실전 감각이 문제였다. 게다가 낯선 환경이었고, 경쟁에 대한 압박도 있었다. 결국 시범경기 성적이 좋지 않았다.
고우석은 시범경기에서 3⅓이닝을 던지며 7피안타(1피홈런) 2볼넷 3탈삼진 6실점 평균자책점 12.46로 부진했다. 평균자책점은 표본이 크지 않으니 그렇다 쳐도 피출루율 0.364, 이닝당 출루 허용율(WHIP) 2.31은 할 말이 없는 부진이었다. 깔끔하게 막는 경기가 많지 않았고, 안타는 물론 볼넷까지 쌓이면서 WHIP가 2.31까지 올라갔다. 18일 열렸던 LG와 서울시리즈 스페셜게임에서도 1이닝 2실점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모습을 보이자 샌디에이고 프런트는 결단을 내렸다. 고우석을 제외하기로 했다. 시즌 전체를 보면 그게 낫다고 본 것이다.
샌디에이고는 20일 시즌 개막에 앞서 샌디에이고는 조니 브리토, 다르빗슈 유, 에니엘 데 로스 산토스, 제레미아 에스트라다, 마이클 킹, 스테픈 콜렉, 조 머스그로브, 로버트 수아레스, 랜디 바스케스, 톰 코스그로브, 마쓰이 유키, 애드리안 모레혼, 완디 페랄타까지 투수 13명을 포함한 개막 로스터를 구성했다. 고우석의 이름은 없었다. 사실 고우석을 대신해 개막 로스터에 들어간 선수들이 지금까지 확정적인 입지를 가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고우석은 수아레스, 페랄타, 마쓰이와 더불어 팀의 필승조로 기대를 모으던 선수였고 입단 당시에는 마무리를 맡을 수도 있다는 후보군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샌디에이고는 냉정했다. 지금 상황에서의 경기력을 봤다.
일단 샌디에이고는 고우석을 트리플A 팀인 엘 파소로 할당했다. 2년 계약을 한 고우석은 2025년에는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있지만, 2024년은 그것이 없다. 고우석도 그래서 계속해서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어야 한다"고 말을 했던 것인데 우려가 현실로 벌어진 셈이다.
마이크 실트 샌디에이고 감독은 "고우석에게 어려운 시간이 됐을 것이다. 투수진을 꾸리는 과정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불펜에서 투구하는 것을 보면서 결정을 내렸다.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할 것 같다. 아직은 빌드업이 끝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고 고우석의 제외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고우석을 시즌 구상에서 배제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실트 감독은 "그래도 개막 하고 나면 팀에 도움이 될 기회가 올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고우석의 컨디션이 올라오면 언제든지 콜업할 의사가 있음을 드러냈다.
실트 감독은 "계속 열심히 노력하라고 전했다. 루벤 니에블라 투수코치, AJ 프렐러 단장과 대화하면서 고우석에 대해 캠프에서부터 적응이 필요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다. 지금까지 잘 해왔고 개선할 점은 있다. 최선의 컨디션을 찾는다면 다시 경기장에서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런 실트 감독의 이야기는 샌디에이고의 다음 구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역 유력 매체인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은 21일 '고우석은 마이너리그에서 뛰기 위해 더블A로 보내질 가능성이 높다. 샌디에이고는 그가 굳이 타자 친화적인 트리플A 퍼시픽코스트리그(PCL) 환경에서 싸울 필요가 없다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이너리그 선수 할당은 3월 28일 최종 결정되는데, 고우석을 더블A로 보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샌디에이고의 트리플A팀인 엘 파소는 퍼시픽코스트리그 소속이다. 트리플A의 또 하나 축인 인터내셔널리그에 비해 타고 성향이 전통적으로 훨씬 강한 리그다. 구장 환경도 그렇고, 선수 구성도 그렇다. KBO리그 스카우트들도 퍼시픽코스트리그 소속에서의 타격 성적은 적당히 감안하고 보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그 어려움을 헤쳐나온 투수들은 꽤 좋은 평가를 한다. 워낙 타고 성향의 리그라 그렇다.
샌디에이고는 고우석이 가진 기량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단지 컨디션의 문제다. 지금은 100% 컨디션을 올리지 못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비자 문제 탓에 캠프 직전에 애리조나에 도착했고, 컨디션이 어느 정도 올라올 때쯤 또 서울시리즈 참가를 위해 장거리 비행을 했다. 이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는 게 샌디에이고의 시선이다.
그렇다면 굳이 트리플A로 보내기보다는, 더블A 무대가 나을 수도 있다. 트리플A는 아무래도 성적을 위해 싸우는 무대다.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려는 예비 전력들이 많다. 베테랑 선수들도 많은 게 트리플A다. 그곳에서 던지다보면 타고 성향에서 가뜩이나 더 성적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지금 샌디에이고가 바라는 것은 성적이 아닌 컨디션 향상인데, 주객이 전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적에 신경을 쓰면 차분한 빌드업을 할 수가 없다. 고우석에게 괜히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지는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더블A는 그래도 환경이 좀 낫다. 고우석이 성적과 무관하게 차분하게 자신의 구위를 끌어올리고 다양한 것을 실험할 수 있는 무대다. 더블A에 각 구단이 보유한 괴물 같은 유망주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 무시할 수 없는 무대지만, 그래도 트리플A에 비하면 전체적인 경기력은 떨어진다. 이 환경에서 고우석은 차분하게 관리를 받으며 차분하게 자신의 무기를 가다듬을 수 있다.
더블A든 트리플A든 어디서 시작하든 성적과 별개로 구위만 다 올라왔다는 평가가 나오면 곧바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등록될 것으로 예상된다. 샌디에이고도 현재 불펜 상황이 넉넉한 편은 아니다. 선발진이 무너지면 중간에서 던질 수 있는 투수의 양질이 타 팀에 비해 떨어진다. 필승조는 어느 정도 구축되어 있으나 투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이것이 잘 드러난 게 20일 서울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LA 다저스와 경기였다. 이날 샌디에이고는 선발 다르빗슈 유의 초반 투구 수가 불어났다. 투구 수 제한이 있었던 다르빗슈는 3⅔이닝 소화에 그쳤고, 중요한 상황에 마쓰이나 페랄타를 먼저 활용하다보니 결국 8회를 막아줄 투수가 없었다. 그 결과 샌디에이고는 2-1로 앞선 8회 4실점하며 결국 역전패를 당했다. 고우석의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쉬웠을 법한 팀이다.
고우석도 다시 차분하게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19일 통보를 받았다고 한 고우석은 "감독님이 잘 준비해라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예상을 못하고 도전한 것도 아니고, 아쉽기는 하지만 다시 잘 준비해서 올라와서 잘해야 한다"고 했다. 아직 구단으로부터 향후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는데, 샌디에이고도 고우석의 향후 페이스업 무대로 어디가 적합한지를 놓고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메이저리그에서 더블A로 가는 게 까마득한 추락처럼 보이지만, 사정을 뜯어보면 다 이런 이유가 있다. 나쁘지는 않다. 샌디에이고는 여전히 고우석을 신경쓰고 있다.
기사제공 스포티비뉴스
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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