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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난민 출신 K리거 “성공해라! 감독님 말 가장 기억”

드루와 0

포항 스틸러스에 4일 자유계약으로 입단한 고등학생 수비수 사무엘 풍기가 포항 엠블럼이 붙은 구단 사무실 앞에서 기념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어릴 적 아버지와 앙골라에서 건너온 사무엘은 국내 프로축구 역사상 첫 난민 신분 선수다. 포항 스틸러스 제공

 

 


영락없는 고등학생의 목소리였다. 프로축구 K리그 포항 스틸러스 선수단에 지난 4일 입단한 사무엘 풍기(19)는 내년에야 학교를 졸업하는 앳된 선수다. 가장 자신 있는 공중볼 장악 능력, 수비 조율 능력 외에도 그를 수식할 수 있는 단어는 또 있다. 프로축구 최초의 ‘난민’ 신분 선수다. 지난 22일 통화한 사무엘은 자신이 K리그에서도 명문으로 꼽히는 포항에 입단했단 사실이 아직도 얼떨떨한 듯했다
 

“너 성공해라”


한국에 난민 출신 프로선수는 매우 드물다. ‘난민 복서’로 불리는 카메룬 출신 권투선수 이흑산과 길태산 정도가 그나마 알려진 정도다. 난민인권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법무부로부터 난민 인정을 받은 이는 79명으로 신청자 대비 인정률이 0.4% 수준에 머문다. 누적된 난민 인정자도 1000명을 겨우 넘는다. 이 중에서 메이저스포츠인 프로 축구단에 선수 자격으로 입단한 건 한국 축구사뿐 아니라 국내 난민 역사에도 기록될만한 일이다.

사무엘은 지난 7일 포항에 소집되면서 프로선수로서 생활을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꿈꿨던 프로행이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기회가 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사무엘은 “(고교) 대회 뛰고 나서 에이전트 쌤(선생님)이 ‘다음 주에 포항 가서 운동할 거니까 준비해’라고 할 때만 해도 왜 그러는 건지 몰랐다”면서 “포항에 다녀오고 나서 (구단이) 절 좋게 봐주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믿기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사무엘은 포항 선수단에서도 귀여움을 받고 있다. 선배들은 그를 ‘무엘이’나 ‘풍기’로도 부른다. 사무엘은 “첫 훈련 날 몸을 풀고 있는데 (김기동) 감독님이 오시더니 ‘너 성공해라’고 짧게 한 마디 해주셨다. 들은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선수가 되기까지 쉽지 않았던 만큼, 코치진과 선배들은 선수로서 사무엘이 성공하길 함께 응원해주는 분위기다.
 

고마운 사람들


그를 가장 챙겨주는 건 대선배 하창래와 올해 초 먼저 포항 선수복을 입은 두 살 형 김민규다. 사무엘은 “창래(하창래) 형은 식사하러 가면서도 조언을 많이 해준다”면서 “민규(김민규) 형은 훈련 끝나고 나서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다음번에는 어떻게 할지를 충고해준다”고 말했다. K리그 영플레이어상 수상자 송민규도 그를 챙긴다. 사무엘은 “송민규 형은 엄청 ‘츤데레’(겉으로 차가운 척하지만 잘 챙겨주는 사람)”라면서 “아닌 것 같으면서도 돌려서 칭찬을 해주고 북돋아 준다”면서 웃었다.

사무엘이 아버지와 한국에 건너온 건 여섯 살 무렵이다. 어린 시절 경기도 평택의 풋살장에서 지역 축구팀 ‘평택 유나이티드’ 아이들이 공을 차는 걸 보고 축구를 하고픈 마음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난민에 외국인 신분인 아버지는 당시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던 상황이라 사무엘이 다른 아이들처럼 회비를 내며 축구를 하긴 어려웠다. 평택 유나이티드를 맡고 있던 김의수 감독은 ‘다 도와줄 테니 그냥 오라’고 사무엘을 잡아 이끌었다.

사무엘은 “감독님이 없었으면 제가 축구를 계속할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힘들 때도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괜찮으니까 그냥 와서 편하게 운동하라고 얘기해주셨다. 고마우신 분”이라고 말했다. 프로행이 확정된 뒤 사무엘은 김의수 감독에게 연락했다. 사무엘은 “감독님이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많이 다를 거다, 좋은 얘기도 안 좋은 얘기도 들리겠지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너 할 것만 열심히 해라.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셨다”고 했다.
 

책임감과 부담, 고마움


사무엘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난민으로 인정받으면서 가족결합(난민인정 시 가족 신분을 고려하는 것) 원칙에 따라 함께 난민으로 인정됐다. 사무엘이 스스로 난민 신분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중학생 때였지만, 당시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앙골라에 있는 다른 가족들과는 지금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다. 현재 사무엘은 대한민국 귀화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물려받은 ‘풍기’라는 성을 버리고 싶지 않아 새 이름을 아직 고민 중이다.

사무엘은 “(외국인으로서) 사는 게 힘들다는 건 어릴 때부터 알긴 했다”면서 “아버지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못 구하는 걸 어릴 때부터 봐와서 익숙하다”고 회상했다. 2018년 제주 난민 사태가 벌어졌을 당시 그는 한국 사회의 반응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는 “(난민이라는 이유로) 모든 사람들에게 안 좋게 보인다는 게 무서웠다. 환영받지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두려웠다”고 설명했다.

어린 사무엘에게 축구 외적으로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인 건 사실이다. 그는 “관심이 고맙기도 하지만 부담이 안된다고 하면 거짓말”이라면서 “당장 내년에 출장 기회를 잡지 못하더라도, 최선 다할 테니 예쁘게 봐달라”고 팬들에게 말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책임감도 있다. 그는 “제가 열심히 해서 사람들의 좋지 않은 인식을 바꾸고 싶다”면서 “쉽지 않겠지만, 이런 사람들도 잘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조효석 기자

기사제공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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