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뉴스

논두렁 연습장, 옥상 배팅장…아버지의 열성이 김태균을 키웠다 [엠스플 레전드]

드루와 0
-한화 레전드 김태균 “은퇴한 뒤 더 바빠, 방송에 인터뷰에 쉴 틈 없어요”
-논두렁에 실내 연습장, 집 옥상에 배팅장 만들어줬던 아버지
-“타고난 천재? 매일 옥상에서 3, 500개씩 스윙 연습”  
-“20년 동안 본 신인 중 보자마자 ‘다르다’고 느낀 건 노시환이 처음” 
 
 
현역 은퇴 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태균(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현역 때보다 오히려 더 바빠요.”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한화 이글스 '레전드' 김태균이 한 말이라 빈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현역 은퇴를 선언한 날부터 지난 두 달 동안, 김태균은 하루도 쉴 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포스트시즌 경기 해설부터 각종 방송 출연과 인터뷰, 여기에 야구 자선재단 설립 준비까지.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만큼 부지런히 움직였다.
 
스케쥴이 비는 시간에도 멍하니 누워 시간을 흘려보내는 법이 없다. 현역 때처럼 매일 개인 운동을 하며 심신을 단련한다. 가족들이 ‘그동안 고생했으니 당분간 푹 쉬라’고 말릴 정도다. 그래도 김태균은 쉬지 않는다. “세상이 바쁘게 돌아가는 데 저 혼자 멈춰 있으면 뒤처진다는 느낌이 들어서...”
 
여기저기 불러주는 곳이 많다는 건, 그만큼 잘 살아왔다는 증거다. 김태균은 한화 후배들을 위해 이른 은퇴를 결심했다. 누군가의 소중한 한 타석을 위해 오랫동안 꿈꿔온 은퇴 경기조차 양보했다. 그가 은퇴 기자회견을 한 날, 한화는 선수단 전체가 모여 기립박수를 보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인사차 방문한 날, 김태균은 미리 준비해온 음료수를 KBO 전체 직원에게 건넸다. 오래 알고 지낸 직원은 물론 이름조차 모르는 직원까지 챙겼다. 한 KBO 관계자는 “세심한 마음 씀씀이에 사무실 분위기가 훈훈해졌다”고 했다. 김태균과 오래 알고 지낸 관계자는 “대스타인데도 항상 겸손하고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한다. 젊을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다”고 했다. 김태균은 그런 사람이다. 
 
야구공을 처음 손에 잡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올 시즌까지, 30년 야구 인생 내내 쉼 없이 달려온 김태균이다. 스스로 “나는 천재형 선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남들보다 몇 배 더 노력했다. 학교 훈련이 끝난 뒤에도 아버지와 함께 배트를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프로 입단 뒤에도 독하게 훈련해 데뷔 시즌 신인왕에 올랐다. 그리고 역대 유일한 300홈런·2000안타 우타자로 KBO리그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남들은 다 은퇴하면 아쉬움이 남는다고 하던데, 난 다르다. 오히려 후련한 마음이다.” 김태균은 자신의 야구 인생을 돌아보며 “조금의 후회도 없다”고 자신했다. 늘 최선을 다했고, 능력 이상의 성적을 올렸고, 팬들의 사랑도 듬뿍 받았기에 아쉬움은 없다. 앞으로 펼쳐질 제2의 인생도 지금껏 해온 대로 김태균답게 헤쳐나갈 각오다.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선 김태균을 엠스플뉴스가 만나 인터뷰했다. 오랫동안 짊어진 짐을 내려놔서 그런지 표정은 밝았고 목소리엔 힘이 있었다.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은 ‘우리 한화’와 ‘우리 후배들’ 그리고 ‘한화 팬’이었다.
 
“와이프는 좀 쉬라고 말리는데, 가만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김태균은 2020시즌을 끝으로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은퇴 뒤 현역 때보다 더 바쁘게 지내는 듯싶다. 포스트시즌 해설부터 각종 방송 출연, 신문과 잡지 인터뷰까지 스케쥴표에 빈틈이 없어 보인다.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행복한 거다. 지금이야 불러주는 곳이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줄어들지 않겠나. 날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을 때 열심히 인사드리려 하고 있다.
 
오늘도 인터뷰 끝난 뒤 곧장 개인 운동하러 간다고 들었다. 은퇴한 지 얼마 안 돼 쉬고 싶을 텐데, 현역 때와 똑같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매일 소화한다는 게 의외다.
 
비시즌 때도 웨이트 트레이닝은 매일 했다. 운동을 꾸준히 하다가 안 하면 몸이 찌뿌둥해서 못 견딘다. 사실 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질 못하는 타입이다.
 
가족들이 말리지 않나. 
 
와이프도 처음엔 쉬라고 했지. "1년 정도 푹 쉬지 뭘 바로 활동하냐"고 하는데 내 성격이 그러질 못해서(웃음). 그냥 집에 누워있거나 축 늘어져 있으면 뭔가 남들에게 뒤처진다는 느낌이 든다. 이상한 기분이다. 세상이 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데 나 혼자 멈춰있는 느낌이랄까.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느긋하고, 낙천적인 듯한데 실제로는 정반대다.
 
'잘하진 못하더라도 노력은 하자'는 주의다. 남한테 지는 건 싫으니까. 
 
‘좌타자 김태균’이 탄생할 뻔한 사연을 아십니까
 
 
김태균은 KBO리그 역사상 최고의 우타자다(사진=엠스플뉴스)
 
 
 
프로 입단 이후의 스토리야 워낙 유명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얘기는 별로 접할 기회가 없었다. 야구는 언제 처음 시작했나.
 
충청남도 천안에 있는 남산초등학교 2학년 때다. 
 
남산초는 좋은 선수를 많이 배출한 곳이다. NC 다이노스 구창모, 삼성 라이온즈 김동엽, KT 위즈 안영명 등이 남산초 출신이다. 
 
그뿐인가. 이상군 감독님(현 북일고)도 계시고, 한용덕 전 감독님, 김진욱 전 KT 감독님, 지연규 NC 코치님이 모교 선배들이다.
 
초등학교 야구계의 양키스네. 야구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원래는 다른 초등학교에 다녔다. 천안 일봉초등학교에 2학년까지 다니다 학기 중간에 전학했다. 나는 내가 야구를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그냥 평소대로 수업받고 있었는데, 교실 창문 위쪽으로 갑자기 아버지 얼굴이 나타나더니 담임선생님을 불러내 얘기를 나누시더라. 그리고 선생님이 "태균이 나와, 전학 가기 전에 친구들에게 인사해" 하시지 뭔가. 
 
거의 트레이드 통보받는 것만큼 충격적이었겠다.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 나갔더니, 이미 교장 선생님과 다 얘기가 됐다면서 날 남산초등학교로 데리고 가셨다. 그 길로 남산초 야구부에 가입해 야구를 시작했다.
 
모든 일에는 전조가 있는 법이다. 야구부 있는 학교로 전학할 거란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았나.
 
우리 사촌 형이 야구를 했다. 나보다 두 살 위인데, 형이 야구하는 걸 보면서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왠지 야구 유니폼 입은 모습이 멋있어 보이더라. 아버지가 내게 "너도 해볼래?"하셔서 알았다고 했지. 정말 야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다. 그때는 선동열이 누군지도 몰랐다. 학교 선생님이 내 손을 보시고 "야, 너 나중에 선동열처럼 되겠다" 하셨을 때 ‘그게 누구지?’ 했을 정도다(웃음).
 
아버지가 야구를 좋아하셨나.
 
좋아하셨다. 아버지가 젊을 땐 고교야구를 보러 동대문 야구장에 자주 가셨다고 한다. 그러다 사촌 형이 야구한다고 하니까, '우리 아들도 한번 시켜볼까' 생각하신 것 같다.
 
지금처럼 대선수로 성장할 재능을 꿰뚫어 본 거 아닌가.
 
그건 아닌 것 같다. 그전까지 내가 야구를 한 적이 없었다. 처음 야구부에 가선 방망이를 왼쪽에서 쳤다. 손은 오른손 타자처럼 (왼손을 아래에, 오른손을 위로 놓는 시늉을 하며) 이렇게 잡고서 왼쪽에서 쳤다. 난 그게 편하더라. 그런데 감독님께서 "태균이는 치는 걸 보니 오른쪽에서 쳐야 할 것 같다" 하셔서 우타자가 된 거지.
 
‘좌타자 김태균’이 될 수도 있었단 얘기네.
 
요새는 다들 왼손으로 치는 추세인데, 좀 아쉽긴 하지. 그때 손 위치만 바꿔서 왼쪽에서 쳤으면 어땠을까. 솔직히 야구하면서 왼손 타자가 부러울 때가 많았다. 우타자보다 한발 덜 뛰고, 한 발 더 빨리 가고. 내가 발이 느리다 보니 한 발 차이로 아웃당할 때가 많았으니까(웃음). 참, 이런 얘기 하면 좌타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해도 된다.
 
우타자들은 날아오는 공이 대부분 나한테서 도망가는 공이다. 오른손 투수가 왼손 투수보다 많으니까. 그런데 좌타자는 거의 다 내 쪽으로 오는 공이거든. 아무래도 타격하는 입장에선 나한테 오는 공이 도망가는 공보다 공략하기 수월하다. 그래서 좌타자가 부러웠던 것도 있다. 
 
강백호, 이정후 등 좌타자에 비해 노시환, 한동희, 변우혁 등 우타 유망주들이 프로에서 고전하는 것도 방금 얘기한 이유 때문일 듯싶다.
 
그래도 (노)시환이는 좋은 선수가 될 거다. 그 친구 신인 때 보고서 깜짝 놀랐다. 20년 동안 본 신인 선수 중에 처음 보자마자 ‘다르다’고 느낀 건 시환이가 처음이다. 신인 레벨이 아니더라. 이제 프로에서 2년 했으니까,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논두렁 연습장, 옥상 배팅장…아버지의 열성이 김태균을 키웠다
 
 
신인 시절의 김태균(사진=한화)
 
 
 
야구를 남들보다 일찍 시작한 편이다. 본격적으로 주전 선수가 된 건 언제였나.
 
초교 2학년 때는 감독님 옆에 앉아서 가만히 보기만 했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3학년 때지만, 그때도 주전 선수는 아니었다. 거의 대타나 대수비로 나갔지. 6학년 형이 주전 우익수로 나가고, 나는 백업으로 출전했다.
 
주전으로 나가고 싶은 욕심이 들지 않던가.
 
한번은 그런 일도 있었다. 주전인 6학년 형이 전국대회 예선을 앞두고 부상을 당했다. 대회는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이 형이 나오질 않으니까 내 딴에는 ‘내가 대신 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껏 설렌 마음으로 훈련하고 있는데, 대회 이틀을 앞두고 그 형이 다시 나오지 뭔가. 어린 마음에 너무 상처를 받아서 그대로 앓아누웠다(웃음). 몸살에 걸려 보름 이상 누워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4학년 올라가면서 드디어 주전 선수가 됐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호리호리하고 날렵했다고 들었다.
 
나름 유격수 겸 1번타자였다. 5, 6학년 때도 계속 1번타자로 나섰다. 감독님 생각엔 내가 잘 치니까 한 번이라도 더 나가서 치라는 의도였던 것 같은데, 결과가 괜찮았다.
 
선진야구를 추구하는 분이셨네(웃음). 아버지도 아들이 야구를 잘하니까 굉장히 기뻐하셨겠다. 
 
그랬다. 초등학교 때부터 연습게임이든 대회든 있으면 항상 따라오셨다. 경기에서 잘 못 하면 집에 가는 내내 엄청나게 혼내곤 하셨다. 솔직히 어린 마음에 잔소리 듣는 게 싫지 않나. 야구하기가 싫어서 자주 도망 다녔던 기억이 난다. 안 한다고 집에 가고, 감독님이 와서 잡아가고 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한번 내가 폭발한 적이 있었다.
 
폭발?
 
6학년 때 연습 경기였는데, 내가 되게 못했다. 아버지가 그날도 엄청 뭐라고 하시지 뭔가. 얘길 듣다못해 내가 소리를 확 질렀다. "아빠가 자꾸 이러니까 나 야구 못하겠다, 나 안 해!"하고 소릴 쳤다. 그 어린 나이에. 
 
아버지 반응이 궁금하다.
 
아무 말 없이 집에 가셨다. 그 뒤로는 연습 경기를 하든 뭘 하든 일절 말씀을 안 하셨다. 잘했다는 얘기도, 못했다는 얘기도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뭔 줄 아나?
 
뭔가.
 
중학교에 올라가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초등학교 때 그렇게 하기 싫어서 난리를 치고도 이렇게 중학교까지 온 거 보니까, ‘이게 내 길인가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는 다른 생각 안 하고 그냥 야구에만 전념했다. 어떻게 하면 야구를 잘할까, 어떡하면 프로에 갈 수 있을까 생각하며 연습했다.
 
논밭에 개인 야구 연습장을 만들었다는 얘길 들은 기억이 난다.
 
우리 아버지가 참 열성적인 분이다. 논두렁에 실내 연습장을 만들어 주셨다. 그래서 학교 연습 끝난 뒤에도 따로 연습하고, 쉬는 날에도 가서 연습했다. 야구부 휴가 끝나고 다시 모였을 때 다른 애들은 감각이 떨어져서 잘 못 하는데, 나만 혼자 잘한다고 해서 ‘천재’ 소리도 들었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휴가 기간에도 매일 아버지와 훈련해서 잘한 거였는데(웃음).
 
‘노력하는 천재’였네.
 
집 옥상에도 실내에서 티배팅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돼 있었다. 이웃 주민들 시끄러울까 봐 티배팅 대신 주로 스윙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매일 옥상에서 스윙을 3백 개, 5백 개씩 돌렸다. 아버지가 "오늘 아빠 늦는다. 먼저 올라가서 스윙하고 있어" 하는 날은 연습하기 싫어서 옥상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아버지 차가 온다 싶으면 그때부터 배트를 휘두르곤 했다(웃음).
 
지금 그때 훈련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그때는 솔직히 너무 싫었다. 정말 싫었는데…그래도 그때 훈련하는 습관이 몸에 밴 덕분에 지금 이렇게 된 거겠지. 사실 내가 재능이 특출한 천재형 선수는 아니니까. 운동신경이나 능력이 그렇게 뛰어나지도 않은 내가 야구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건 어릴 때부터 열심히 훈련한 덕분 아닐까. 
 
 
 
 
배지헌 기자

기사제공 엠스플뉴스

, , , , , , , , , , , , , , , , ,

0 Comments
번호 제목
Categ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