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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 구역의 미친 선수는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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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아산, 박진호 기자] "나 때문에 질 뻔했다. 솔직히 삼성생명이 이렇게 나올 줄 몰랐다."

지난 27일, 아산이순신체육관에서 벌어진 KB국민은행 Liiv M 2020-2021 여자프로농구 플레이오프 첫 경기에서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에 74-69로 신승을 거둔 위성우 아산 우리은행 위비 감독은 준비에서 실수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삼성생명의 핵심 자원인 배혜윤과 김한별에게 초점을 맞춰 수비로 승부를 볼 생각이었고, 삼성생명이 스몰라인업으로 외곽을 공략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는 것. "선수들이 공격에서 역전을 시켜서 이길 수 있었다"며 삼성생명의 변칙 대응에 당황했음을 시인했다.

위 감독은 정규리그에서 우리은행을 만나면 21.3%에 그쳤던 삼성생명의 외곽이 전반에만 50% 이상의 적중률을 보인 것도 수비 준비를 제대로 못 해서였다고 밝혔다.

위성우 감독의 의표를 찔렀던 삼성생명의 반격. 그 선봉에 섰던 선수는 김단비였다. 김단비는 이날 36분 25초를 뛰며 3점슛 3개 포함 23점 6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번 시즌 정규리그 우리은행과의 6경기에서 평균 25분 38초를 뛰며, 7.8점 3.5리바운드를 기록했던 김단비는 우리은행 전에서 총 20개의 3점슛을 시도해 단 3개를 성공하는 데 그쳤다. 성공률은 고작 15%.

그랬던 김단비가 리그 최강인 '우리은행의 수비'를 흔들었다. 위성우 감독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선수한테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청주여고 출신인 김단비는 광주대를 중퇴하고 2011년 수련선수로 우리은행에 입단했다. 김단비에게 본격적으로 기회가 주어진 것은 위성우 감독이 우리은행 지휘봉을 잡은 2012년 이후였다.

'꼴찌의 반란'으로 리그를 평정한 위성우 감독은 김단비를 핵심 식스맨으로 키워냈고, 김단비는 2014-15시즌부터 우리은행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후, 우리은행이 김정은을 FA로 영입하자, 보상선수로 하나원큐의 유니폼을 입었고, 이번 시즌에도 FA로 이적한 양인영의 보상 선수로 삼성생명 선수가 됐다.

삼성생명에서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찍은 김단비는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친정 우리은행을 상대로 은사인 위성우 감독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흔히들 플레이오프와 같은 큰 경기에서는 소위 '미친 선수'가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이날, 김단비가 그랬다. 외곽 뿐 아니라 골밑도 적극적으로 공략했고, 페인트존에서 유려한 움직임으로 우리은행을 당황케 했다. '준비를 잘 못했다'고 자책한 위성우 감독의 심장에 김단비는 거대한 말뚝을 꽂았다.

하지만 김단비는 끝내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승부처에서 김단비를 넘어서는 더 '미친 선수'가 나왔기 때문이다. 역전승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우리은행 박지현이다.

박지현은 이날, 경기 초반부터 삼성생명의 수비에 막혀 어려움을 겪었다. 삼성생명의 강력한 맨투맨과 스위치 디펜스에 묶이며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다.

3쿼터까지 7득점. 야투는 3점슛과 2점슛 1개씩을 성공했을 뿐,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 4쿼터에는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박지현이 경기 종료 2분 40초 전, 먼 거리에서 성공시킨 3점슛은 삼성생명의 승기가 굳혀지는 듯했던 흐름을 한 순간에 바꿔버렸다.

역전패를 당한 임근배 삼성생명 감독은 "상대가 먼 거리에서 3점슛을 쏠 수 있기 때문에 길게 수비하는 걸 대비했는데, 경기 내내 잘 하다가 마지막에 결정적인 것을 놓쳤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하지만 삼성생명이 대비한 '먼 거리 3점슛을 던지는 요주의 선수'가 과연 박지현이었을까? 박혜진이나 김소니아였다면 모를까, 박지현은 보통 먼 거리에서 3점슛을 던지는 선수가 아니다.

이번 시즌 박지현의 3점슛 성공률은 28.9%. 정확도가 높다고 할 수 없다. 심지어 오픈 찬스에서는 높은 확률을 보이지만, 수비를 달고 있는 상황에서는 정확도가 많이 떨어지는 박지현이다. 그런 박지현이 승부처에서 과감하게 먼 거리 3점슛을 던지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은행도 몰랐다.

위성우 감독은 "박지현이 던질 줄 몰랐다. 3점슛이 들어갔는데 누가 넣었는지도 몰랐다. 나중에 물어보니까 (박)지현이가 넣었다더라"며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함께 뛴 주장 박혜진도 마찬가지. 박혜진 역시 "지현이가 거기서 슛을 던질 줄 몰랐다. 그게 안 들어갔으면 나중에 감독님한테 한 소리 들었을 것"이라며, 정상적이었다면 박지현이 슛을 던지는 상황이 아니었음을 밝혔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어린 선수가 과감하게 슛을 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라며 박지현의 활약을 인정했다.



 



박지현은 어떤 생각으로 3점슛을 던졌을까?

잠시 머뭇거린 박지현은 "저 미쳤었나 봐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미친 선수'의 '미친 3점슛'은 경기 분위기를 바꿨다. 그리고 박지현은 69-69 동점이던 종료 45초 전, 이날의 승부를 결정지은 위닝샷을 바스켓카운트로 마무리했다.

이번 시즌 승부처에서 수없이 결정적인 득점을 성공하며 '에이스의 품격'을 과시한 것은 박지현이 아닌 박혜진이었다. 박혜진의 최근 활약은 WKBL의 전설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변연하 전 BNK 코치조차 "현역 시절의 나보다 지금의 박혜진이 더 잘하는 것 같다"고 칭찬 했을 정도.

박혜진은 자타공인 '리그 최고의 타짜'이자, 수많은 상대팀 선수들에게 눈물을 선사했던 '우리은행의 마녀'다.

하지만 이날만은 달랐다. 요소요소에서 자신의 역할을 빈틈없이 해낸 박혜진은 여전히 무서웠지만, 승부처에서의 에이스는 박지현이었다.

박지현은 "수비가 (박)혜진 언니에게 집중하고 있어서 돌파를 시도했다"며, 수훈갑다운 강심장을 자랑했다. 박지현은 결정적인 득점을 포함, 4쿼터에만 11점을 집중시키며 이날, 코트에서 가장 미쳐있던 선수가 바로 자신이었음을 증명했다.

에이스 박혜진에, '미친 선수 경쟁'에서 판정승을 거둔 박지현의 활약까지 더한 우리은행은 86%의 확률을 선점했다. 역대 WKBL에서 플레이오프 1차전 승리 팀의 챔피언 결정전 진출 확률이 86%다.

하지만 속단은 이르다. 불과 2년 전, 우리은행은 지금보다 더 높았던 챔프전 진출 확률의 플레이오프 1차전 승리를 거두고도 내리 두 경기를 내주며 챔프전에 오르지도 못한 채 통합 6연패의 막을 내렸다.

그때의 상대도 삼성생명이었다.

우리은행은 그때도 아산에서 1차전을 이긴 뒤 리버스 스윕을 당했다. 이번 시즌과 마찬가지로 전력 면에서 우리은행이 압도적으로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당시 삼성생명은 역전의 마법을 보여줬다.

비록 패했지만, 삼성생명은 무기력했던 정규리그 후반기가 전부 연막 작전이었던 것처럼 1차전에서 기대 이상의 저력을 보여줬다. 변수는 여전히 존재한다. 플레이오프는 이제 시작이다.



사진 = 이현수 기자

박진호 기자

기사제공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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