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딕슨 마차도 향한 극소수의 비판 목소리, 귀 기울일 가치 있을까
-롯데에 마차도 없다면? 수비와 타격 동반 붕괴한 강민호 유출 사태 되풀이
-타격 약하다고 욕먹지만 실제로는 마차도보다 잘 치는 외국인 타자, 유격수 거의 없어
-새로운 팀 컬러 추구하는 롯데, 공수 겸비한 마차도는 반드시 필요한 선수
롯데 유격수 딕슨 마차도(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엠스플뉴스]
지난 10월 3일 사직에서 열린 NC-롯데전은 딕슨 마차도를 위한 무대였다. 이날 리드오프로 나온 마차도는 2안타 4타점 맹타를 휘두르며 ‘타격이 약하다’는 일각의 평가에 야구로 반박해 보였다.
수비에서도 결정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9회초 NC가 애런 알테어의 3점포로 4점 차까지 추격해온 상황, 분위기가 이상해지려고 할 때 마차도가 움직였다. 윤형준의 3유간 빠지는 타구를 특유의 역동작으로 잡은 마차도는 그대로 몸을 틀어 던져 아웃으로 만들었다.
마차도의 호수비로 1사 1루가 될 수도 있었던 상황은 2사 주자 없는 상황이 됐다. NC의 추격 흐름이 끊어지면서 사실상 경기도 거기서 끝났다. 롯데에 왜 마차도가 필요한지,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이해하기 쉽게 알려준 경기였다.
만약 마차도가 롯데에 없다면? 강민호 유출 사태 ‘유격수 버전’ 겪는다
딕슨 마차도와 김동한 코치의 2020시즌 경기 장면(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만약 일각의 주장처럼 당장 내년 시즌 롯데에서 마차도가 사라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강민호가 삼성으로 떠난 뒤 롯데 포수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 유격수 자리에서 되풀이된다고 보면 정확하다.
그 시절 롯데는 이 포수 저 포수 온갖 포수를 다 써봤지만, 누구도 버텨내지 못했다. 하나같이 거센 비난과 극심한 스트레스에 무너져 내렸다. 포수가 무너지자 투수들도 함께 무너졌다. 수비도 수비지만 공격력도 처참했다. 9개 팀이 지명타자를 쓰는 아메리칸리그에서 롯데만 홀로 내셔널리그 룰로 경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나나랜드’ 멤버들은 현재 한 명은 투수로(나균안), 다른 한 명은 외야수 겸 투수로(나원탁) 전향했다. 포수조 최고참 김사훈은 은퇴했다. 그나마 4명 중에 가장 성적이 나았던 안중열은 군복무를 마치고 올해 돌아와 주전 포수 자리를 꿰찼다. 강민호 없는 포수 자리를 그래도 지금 수준으로나마 안정시키는 데 무려 4년이 걸렸다.
이런 비교는 결코 비약이 아니다. 마차도가 오기 전 롯데 유격수 자리의 상태가 2018년 롯데 포수진과 아주 비슷했기 때문이다. 2019시즌 롯데 유격수 자리는 공격력은 물론 수비 생산성도 리그 최악이었다.
당시 롯데 유격수들은 OPS 0.590으로 리그 꼴찌, wRC+ 64.1로 리그 꼴찌의 타격 성적을 합작했다. 수비에서도 리그에서 가장 많은 31개 실책과 뒤에서 두 번째로 낮은 타구처리율(86.17%)을 기록하며 공수에서 손해를 끼쳤다. 당시 유격수로 나왔던 선수 중에 신본기와 전병우는 다른 팀으로 떠났고, 김동한과 문규현은 은퇴하고 코치가 됐다. 강로한과 신용수는 외야수로 전향했다. 유망주로 분류되는 배성근 하나만 여전히 내야수로 남아 있다.
마차도가 있고 없고의 차이. 롯데의 연도별 수비효율(DER)과 유격수 타구처리율, 병살처리율, 내야타구타율, 내야안타허용률 비교(통계=스탯티즈)
이런 유격수 대재앙을 일거에 해결한 선수가 바로 마차도다. 마차도는 뛰어난 기본기와 환상적인 풋워크, 강한 어깨, 빠른 송구동작, 침착성을 겸비한 A급 수비수로 도무지 답이 없어 보였던 롯데 유격수 수비를 단숨에 1위로 끌어올렸다.
2019년 0.665로 리그 꼴찌였던 롯데 DER(수비효율) 지표는 마차도가 합류한 2020년 0.686으로 무려 2푼 1리나 뛰어올랐다. 86.17%였던 유격수 자리의 타구처리율은 90.65%로 향상됐고, 52.3%였던 병살 처리율도 59.2%로 순식간에 리그 정상급이 됐다.
마차도가 온 뒤 예전 같으면 1아웃만 잡고 끝났을 타구는 병살이 됐고, 내야안타가 됐을 타구도 여유 있는 아웃이 됐다. 실책과 내야안타로 출발해 대량실점으로 이어지던 악순환의 고리를 마차도는 호수비 하이라이트로 단칼에 끊어냈다. 4.87로 리그 꼴찌였던 롯데 팀 평균자책은 지난해 4.64로 리그 6위로 뛰어올랐다.
타격 약하다고 욕먹는 마차도, 막상 찾아보면 마차도보다 잘 치는 외국인 타자 별로 없다
마차도가 필요한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아는 건 롯데 투수들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물론 마차도에게 에릭 테임즈나 멜 로하스급 공격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난해 보여준 공격 퍼포먼스에 비해 올 시즌 타격 성적이 다소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야구는 상대보다 많이 득점하거나 적게 실점하면 이기는 경기다. 공격에서 1점을 만드는 플레이와 수비에서 1점을 막아내는 플레이의 가치는 다르지 않다. 단지 공격 기여도가 좀 더 수치화하기 편해서 눈에 잘 들어올 뿐이다.
막상 올 시즌 마차도보다 뛰어난 공격력을 발휘한 외국인 타자를 찾아보라고 하면 실제로는 몇 명 되지 않는다. 200타석 이상 나온 외국인 타자를 OPS로 줄 세우면 삼성 호세 피렐라가 0.872로 1위, 두산 호세 페르난데스가 0.858로 2위고 NC 알테어가 0.855로 3위다. 다음으로는 SSG 제이미 로맥이 0.776으로 4위, 그 다음이 0.711을 기록 중인 마차도다. 이미 퇴출된 KT 조일로 알몬테(0.744)와 LG 로베르토 라모스(0.739)는 제외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롯데가 마차도를 버리면 공격력이 더 뛰어난 타자를 데려온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공격력만’ 보고 데려온 LG 저스틴 보어(OPS 0.545), 키움 데이비드 프레이타스(0.671), KIA 프레스턴 터커(0.689), 한화 라이온 힐리(0.700)는 KBO리그 투수들을 메이저리그급으로 보이게 만드는 성적을 올렸다. 공격력 좋은 외국인 타자를 고르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마차도의 넓은 수비범위(오른쪽). 왼쪽은 리그 최고 유격수 오지환의 수비범위(그래픽=스탯티즈)
설령 데려온 선수가 방망이를 기막히게 잘 친다고 해도, 포지션 문제가 남는다. 올해 마차도보다 타격 성적이 좋았던 6명의 전현직 외국인 타자 중에 수비에서도 팀에 도움을 줬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선수는 NC 알테어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지명타자 요원이거나 전문 1루수로 수비와는 담을 쌓은 선수들이다.
반쪽짜리 타격 원툴 지명타자를 데려와서 내년 41세 시즌을 맞는 이대호에게 1루수를 맡겨야 할까. 만약 내부 FA 정훈이 팀에 남는다고 가정하면, 정훈을 어느 자리로 보내야 하나. 외국인 타자가 지명타자 자리를 독차지하면 살짝 스크래치 난 선수, 휴식이 필요한 선수는 꼼짝없이 벤치에 앉아야 한다. 발 느린 타자와 주자가 줄줄이 나오면서 쏟아낼 무수한 병살타는 상상만으로도 현기증이 난다. 이건 이미 롯데가 과거에 수없이 해봤던 야구고, 실패한 모델임이 증명된 야구다.
설령 알테어처럼 수비, 주루까지 다 잘하는 선수가 또 하나 시장에 나와서 운 좋게 롯데가 데려온다고 가정해도 여전히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그럼 마차도가 빠진 유격수 자리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올 시즌 KBO리그엔 마차도보다 잘 치는 외국인 타자도 거의 없지만, 마차도보다 뛰어난 유격수 자원도 많지 않다. 마차도의 OPS와 wRC+는 유격수 가운데 박성한-하주석-김혜성에 이은 4위에 해당한다. OPS 0.624짜리 선수, 0.647짜리 선수를 주전 유격수로 쓰는 팀이 있는 현실에서 마차도한테 방망이 못 친다고 구박하면 저 선수들은 뭐가 되나.
좋은 주전 유격수 하나 키우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리그 최고 유격수 김하성이 괜히 비싼 몸값을 받고 메이저리그로 간 게 아니다. 올해 박성한이 갑자기 확 튀어나온 SSG 랜더스는 박진만이 은퇴한 2015년 이후 무려 6년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그 사이 실책왕 외국인 유격수(헥터 고메즈)를 써보기도 하고 외부영입 노장(나주환)에 기대기도 했다. 대안을 찾다 찾다 결국 김성현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지난한 과정을 거친 끝에 올해 비로소 박성한이란 대안을 찾았다. 물론 2~3년간 꾸준한 활약을 보여준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다른 팀 주전 유격수도 하루아침에 거저 자리를 차지한 선수는 없다. LG 오지환은 데뷔후 10년 가까이 시행착오와 시련을 겪은 끝에 리그 정상급 유격수로 올라섰다. 한화 하주석도 9년의 수난을 거쳐 올해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는 중이다.
매년 전진과 후퇴를 반복한 KT 심우준도 벌써 데뷔 7년 차다. NC 노진혁도 올해가 입단 10년 차 시즌이다. 주전 유격수 하나를 만드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희생이 필요하다.
‘대체불가’ 롯데엔 마차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선수들도 안다
강력한 송구를 자랑하는 마차도(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마차도가 필요없다고, 국내 선수로 대체하자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말부터 내뱉기 전에, 롯데 유격수 가운데 과연 누가 마차도급 타격과 수비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머리로 생각하는 게 먼저다.
현재 롯데 유격수 자원 가운데 당장 마차도를 대신할 만한 선수는 단언컨대 없다. 아직 1군 무대에 적응 중인 배성근과 김민수에겐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2군에서 유격수로 나오는 이주찬, 이호연도 아직은 1군 레벨과는 거리가 멀다. 마차도를 빼고 이들에게 당장 1군 유격수 자리를 맡기는 건 강민호 없이도 한 시즌을 치를 수 있다고 착각했던 과거 롯데 수뇌부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일이다. 수비력, 투수력, 공격력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안 봐도 훤히 보인다.
올해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윤동희, 김세민, 한태양 등은 장래가 창창한 유망주지만 2군에서 시간을 두고 육성해야 할 자원이다. 고졸 신인이 바로 1군 주전 유격수가 돼주길 바라는 건 과욕이다. 그보다는 마차도가 1군 무대에서 시간을 벌어줄 동안 어린 선수들이 성장해 자연스럽게 국내 선수로 교체가 이뤄지는 그림이 이상적이다.
또 하나, 롯데는 올 시즌 뒤 사직야구장 펜스 확장 공사를 계획 중이다. 타자친화구장인 사직구장을 투수친화구장으로 바꾸고, 투수력과 수비력 중심의 새로운 팀 컬러를 만드는 게 롯데가 추구하는 방향성이다. 이대호와 함께하는 내년 시즌만이 아니라, 이대호를 비롯한 베테랑 선수들 이후까지 바라보고 그리는 큰 그림이다.
이런 방향성에 막상 한국에 와서 거포가 될지 보어가 될지 예측하기 힘든 공격형 외국인 타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강력한 수비력과 평균 이상 공격·주루 능력을 갖춘 마차도가 더 잘 들어맞는 조각이다. 설령 다른 외국인 선수를 찾더라도 마차도와 비슷한 유형을 데려올 가능성이 높다. 마차도에겐 새 외국인 선수에겐 없는 한국무대 경험과 적응력이 있다.
자신을 둘러싼 잡음이 귀에 거슬렸는지, 마차도는 10월 들어 갑자기 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10월 4경기 14타수 5안타 6타점에 타율 0.357 장타율 0.500을 기록하며 시즌 타율도 0.274로 끌어올렸다. 마차도의 공수 활약과 함께 롯데도 4연승, 꺼져가던 포스트시즌 가능성의 불씨를 다시 살렸다. 롯데가 강팀으로 가려면, 마차도가 꼭 필요하다. 누구보다 롯데 선수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기사제공 엠스플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