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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출신의 빅맨 전환, 힘들었지만 불만은 없었습니다”

드루와 0

[김종수의 농구人터뷰(59)] '아르헨티나 특급' 김민수

 



2008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는 역대 최고 황금드래프트중 하나로 불린다. 1라운드에서 뽑힌 대부분 선수들이 팀내 주축선수 및 주전급 혹은 핵심 식스맨 등으로 상당 기간 동안 활약을 이어나갔기 때문이다. 특히 로터리픽으로 지명된 하승진, 김민수, 윤호영, 강병현 등은 어지간한 년도였으면 모두가 1순위가 가능한 선수들이었다.

그중에서도 1순위 하승진(연세대)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기량여부를 떠나 무난하게 코트에 나서서 경기를 뛸 수 있는 역대 최고(221.6cm)의 사이즈는 누구도 지나칠 수 없는 매력 요소였다. 드래프트 당시 기준으로 역대 어떤 1순위를 가져다놓아도 하승진보다 먼저 뽑힐 선수는 쉽게 장담하기 힘들다.

하승진 다음 순위는 누구일까에도 관심이 모였던 것도 사실이다. 윤호영과 강병현은 중앙대 전성시대를 이끈 주역들이었다. 윤호영은 졸업반 시절 공수겸장 올어라운드 플레이어로 최고의 주가를 올렸으며 강병현은 빼어난 기량에 더해 잘생긴 외모까지 갖춰 차세대 KBL 아이돌로 기대를 모았다.

그런가운데 윤호영, 강병현 등을 제치고 2순위를 차지한 선수는 경희대 포워드 김민수(40 ‧200cm)였다. 한국계 어머니를 둔 혼혈선수로 유명세를 타고 있던 그는 사이즈, 파워, 운동능력에 더해 내외곽에서 고르게 득점을 올릴 수 있었던 전천후 선수였던지라 ‘잘 성장한다면 KBL에서 외국인선수급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김민수는 KBL무대서 성공한 커리어를 보냈다. 자신을 지명한 SK에서 원클럽맨으로 뛰며 2008~09시즌부터 2020~21시즌까지 533경기에서 평균 10.2득점, 4.5리바운드, 1.2어시스트를 남겼다. 이른바 암흑기 시절부터 팀을 지켜내며 이후 우승까지 거머쥔 SK의 살아있는 역사와도 같은 존재다. 김선형, 최준용에 앞서 SK 프랜차이즈 스타 1호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충분히 잘했지만 더 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있다. KBL 무대서 상위 클래스로 꼽힐만한 성적을 거뒀음에도 그런 말이 나온다는 자체가 김민수에 대한 당초 기대치를 짐작케해준다. 현재 모교인 경희대에서 코치로 있으며 제2의 농구인생을 살고있는 김민수를 만나 지나온 길과 앞으로 걷고 싶은 길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친구처럼 편하게 선수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Q.요새 어떻게 지내십니까?

대학 시즌도 끝났고 지금은 휴가 기간입니다. 내년 3월까지는 선수들 몸 만들고 시즌 준비하고 그래야겠죠. 덕분에 집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개인적으로는 골프를 배우고있어요. 그렇다고 마냥 놀 수만은 없어요. 고등학교도 돌면서 유망주들 경기하는 것도 지켜보고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꽤 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대학팀은 스카웃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력 자체가 달라지잖아요. 전국적으로 워낙 유명한 선수들은 아무래도 유명한 특정 대학으로 몰리는 경향이 여전히 강한만큼 지속적인 전력 탐색을 통해 진흙 속의 진주도 찾고 성장가능성 높은 친구들도 살펴보고 그래야죠. 김현국 감독님께서 이래저래 고생이 많으신만큼 옆에서 많이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Q.스스로 어떤 유형의 지도자라고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어린시절 외국에서 농구를 해왔다는 점에서 그 부분을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간혹 계세요. 헌데 특별할 것은 없은 듯 싶어요. 어느 나라든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운동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비슷해요. 쳐져있으면 기살려주려고 하고, 해이해져 있다 싶으면 엄하게 하기도 하고요. 아, 그런 것은 있어요. 한국농구같은 경우 선후배, 스승과 제자 사이가 다소 엄격한 편이잖아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예전에는 정말 장난아니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되도록 권위적인 것보다는 수평적인 관계를 좋아해요. 운동할 때는 소리도 치고 그렇지만 평소에는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려고하죠. 칭찬도 아끼지않고싶고요. 뭐든지 마찬가지겠지만 스스로 즐겁다고 느껴야 성장도 따라오거든요. 시키는 것만 억지로 따라해서는 한계가 있어요.

Q.또래 혼혈선수 출신 중에서 엘리트 쪽에서 지도자로 있는 유일한 분같아요.
유일이라고 장담은 못하겠지만 일단 제가 알기로도 그런 듯 싶어요. 3대3농구나, 스킬트레이닝 쪽으로 많이 빠져있죠. 사실 저도 스킬트레이너를 생각해본 적은 있어요. 하지만 건강문제로 금새 마음을 접었습니다. 스킬트레이너는 직접 보여주면서 가르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저는 허리랑 무릎이 고질적으로 좋지 않은지라 현재는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움직임을 낼수가 없어요. 얼마 전부터 스킬트레이닝을 시작한 (전)태풍이형같은 경우 미국에서 농구를 하다 바로 프로에 온 케이스라 몸관리가 잘되어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몸이 건강해요. 저는 대학교를 한국에서 나온지라 조금 달라요. 제가 다닐 당시 경희대 최부영 감독님은 평소에는 정말 자상하시고 좋았지만 코트에서만큼은 호랑이셨어요. 훈련량도 엄청났고요.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 시절 몸에 무리도 많이갔고 내구성도 꽤 깎였던 듯 싶어요.



 



Q.자녀는 어떻게되며 농구는 하고있는지 궁금합니다.
딸이 한명있기는해요. 초등학교 4학년이에요. 아직까지 농구를 막 좋아한다는 느낌은 받지못했어요. 다만 춤추고 노래하고 뛰어노는 것은 좋아합니다. ‘W걸스’라고 농구공을 가지고 음악에 맞춰 춤추는 퍼포먼스팀이 있거든요. 공연도 많이하고요.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유소년 클럽 정하윤(37‧177cm) 코치가 만들고 진행중이라고 알고있는데 거기서 열심히 즐기고있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잘 알지못하고요. 아내가 코치님과 좀 친분이 있는 듯 싶더라고요. 어쨌거나 아빠가 농구를 했다고 그길로 가기를 바라고 그러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때 행복하잖아요. 다양한 쪽으로 호기심도 많고 공부도 잘하고 그러니까 갈 수 있는 길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아르헨티나에 백인이 많은 이유요? 사실 저도 궁금합니다”

Q.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어요. 고향은 어디이며 어떤 곳인가요?

농구는 오래해왔지만 그 외 부분에서의 저는 뭔가에 막 꽂히거나 그러지는 않는 편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좋은게 좋은거라고 둥글둥글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게 또 두루뭉술 한 것 같다가도 장점도 꽤 있어요. 어딘가 낯선 곳에 가도 적응을 빨리 할 수 있고 다소 이해못하는 상황에 부딪혀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때도 많죠. 예민한 사람들에 비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나 할까요. 아르헨티나는 일단 국토 면적이 무척 커요. 한국보다 이십 몇배라고 하더라고요. 국토의 90%가량이 여전히 산과 바다 등일 만큼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어요. 어찌보면 개발이 그만큼 덜 됐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공기 등은 아주 깨끗해서 친환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로인해 관광산업 등도 발달했고요. 미세먼지같은 것도 저는 한국와서 처음들어봤어요. 아르헨티나에서는 생소한 단어였거든요. 면적대비 인구수도 적은 편이라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상당히 많습니다. 다만 한국과 비교해서 단점이라면 치안이 좋은 편은 아니에요. 마약도 골칫거리고요. 하지만 지역별로 편차는 있어요. 위험한 곳만 가지않는다면 별일은 없습니다. 저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이에요.



 





 



Q.아르헨티나하면 브라질 등 다른 주변국에 비해 백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거기서 태어나서 성장했지만 그 부분은 사실 저도 신기해요. 백인들이 많은게 아니라 거의가 다 백인이죠. 아르헨티나가 축구로 유명하잖아요. 월드컵 등 보면 다른 남미국가들은 흑인들이 많이 섞여있는데 유독 아르헨티나만 백인 일색이죠. 스타일은 딱 개인기 위주의 남미 색깔인데요. 최근 들어 흑인도 종종 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99%는 백인이지 않을까싶어요. 따지고보면 혼혈도 많지만 백인을 연상시키는 외모가 다수죠. 지리적 위치상 문화나 살아가는 방식 등은 다른 남미국가와 크게 다르지않아요. 유독 특정 인종들이 압도적으로 많을뿐이죠. 1800년대 스페인에서 온 인물들이 주를 이루고 성장시켰다고 들었어요. 브라질같은 경우는 포르투칼, 아프리카인들이 많이 정착을 했고요.

Q.큰 키는 누구에게 물려받았을까요?
우리 아빠죠. 195cm였어요. 친가 쪽이 전체적으로 다 커요. 고모라고하죠? 아빠 여동생. 고모가 183cm, 삼촌이 197cm 그랬으니까요. 엄마 쪽은 그냥 평범해요. 163cm이었으니까요. 그래도 당시 엄마 나이 감안하면 한국인 여성중에서는 작은 키는 아니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거나 가족끼리 사진을 찍으면 항상 엄마가 막내같아 보였어요. 제일 작았으니까요.(웃음)

Q.혼혈이라는 이유로 자라면서 인종차별 등을 받아보셨을까요?
중국사람같이 생겼다고해서 그런식으로 별명을 만들어서 부르고 그러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딱히 기분상하고 그런 것은 없었어요. 또래들끼리 흔히 별명 만들어서 장난치고 그러는 정도였으니까요. 여기가 통칭해서 백인들의 나라지 속내를 들여다보면 또 달라요. 스페인, 이탈리아 등등 많은 인종, 문화가 섞여있어요. 그전에 살던 원주민도 있을 것이고요. 실상 따져보면 태반이 혼혈이라고봐도 과언이 아니에요. 백인같이 생겼지만 피부색은 그렇게 하얗지않은 사람들도 많고요. 마음에 상처가 남을 정도로 차별을 받거나 그런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Q.아르헨티나도 미국처럼 길거리 농구등이 활성화된 곳인가요?
사실 제가 마지막으로 아르헨티나를 가본게 20년이 넘었어요. 그래서 솔직히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있을 때는 그래도 곳곳에 농구 골대가 있었고 서로서로 즐기는 풍경이 흔했거든요. 축구에 비할바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농구도 제법 인기가 많은 나라이니 여전히 많이들 하지않을까 짐작할 뿐입니다. 이제는 전설이 된 마누 지노빌리를 필두로 카를로스 델피노, 루이스 스콜라, 안드레 노시오니, 파쿤도 캄파조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잖아요. 어쨌거나 완전히 한국 생활에 적응하다보니 저도 이제는 아르헨티나가 낯설어요.(웃음) 아빠는 돌아가셨고요. 엄마를 비롯한 가족들은 여전히 아르헨티나에 있어요. 엄마같은 경우 함께하고 싶어서 한국에 모시고 왔거든요. 그런데 얼마있지 않아서 다시 아르헨티나로 가셨어요. 엄마가 핏줄이 한국사람이고 한국 말은 잘하지만 어릴 때 아르헨티나로 가서 거기서 성장하고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어요. 먹고 생활하고 사고하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일반 아르헨티나 사람들하고 거의 차이가 없을거에요. 50년 넘게 그렇게 살다가 할머니가 되어서 한국에서 적응하기는 사실상 어려웠겠죠. 친구도 없고 아는 사람도 적고 문화나 기타 등등 모든 다 낯설었을거에요. 그냥 가끔 한번씩 엄마가 한국에 와서 그렇게 서로 얼굴보고 그러고 있습니다.

Q.엄마와 유독 사이가 끈끈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하하핫…, 엄마 아들 관계야 어느 집이든지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낳아주고 길러주고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엄마인데 끈끈하지 않을 수가 없죠. 아빠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가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도 늘 많은 사랑을 주셨고 친구처럼 서로 편하게 지냈어요.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엄마랑 술도 종종 함께 마시고 그랬던 기억도 나네요. 소중한 엄마이자 세상에서 제일 편한 친구같은 분이죠.



 



“전문 3번에 대한 아쉬움은 크지않습니다. 개인보다 팀이 우선이니까요”

Q.농구를 시작하게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엄마 손에 이끌려서 5살 때부터 태권도 클럽을 다녔는데 거기에 농구팀도 함께 있었어요. 태권도를 하다가 창밖을 보면 농구하는 모습이 보였거든요. 하고싶더라고요. 그래서 엄마에게 말씀드렸죠. 사실 아빠도 농구를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것저것 재주가 많으셔서 하나에 집중을 안하셨던 것 같아요. 얼굴도 되게 미남이셨어요. 그래서 유명하지는 않지만 영화배우 생활도 하셨고요. 어쨌든 6살때부터 농구를 시작했으니 한국과 비교하면 엄청 빠른거죠. 하지만 아르헨티나 역시 미국 등처럼 엘리트스포츠 개념이 없는지라 학교도 다른 아이들처럼 다니면서 농구를 한거라 한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해석해야 될 듯 해요.

Q.처음에는 어떤 포지션을 맡으셨나요?
어릴 때는 키가 커서 센터를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점차 슛도 좋아지고하면서 스몰포워드 쪽으로 플레이 스타일이 굳어졌어요. 아르헨티나같은 경우는 키로 포지션을 정하지는 않거든요. 하지만 한국와서는 달랐어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에는 저처럼 2m정도 되는 선수는 무조건 빅맨을 해야했어요. 아마도 큰 선수가 적은 현실이 반영된 것이겠죠. 그래서 한국와서 초반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지금은 이현중, 여준석, 송교창, 최준용 등의 빅 스윙맨들이 계속 나오고 있잖아요. 저도 요새 뛰었으면 비슷한 역할을 맡지 않았을까 싶습니다.(웃음)

Q.프로에서 뛸 당시 ‘힘은 좋은데 자꾸 몸싸움을 피한다’고 안좋은 소리도 꽤 나왔어요.
이게 참 어려워요. 저도 그런 지적을 많이 받고 고치려고 계속해서 노력도 했어요. 제가 맡고있는 포지션에 대해서도 자꾸 생각을 했고요. 한데 몸에 배인 습관이라는게 참 어려워요. 골밑에만 충실하려고 생각하다가도 어느 순간 외곽에 나와서 플레이하고 있더라고요. 저보다 힘이 약한 선수가 몸싸움을 걸어오면 그냥 뿌리치거나 뚫어내야하는데 스윽 피하고 슛을 쏘게 되요. 저도 답답했습니다. 그래도 나중에는 감독님들도 점점 이를 인정해주시고 나름 제 장점을 살릴 수 있게 해주시더라고요.

Q.한국에는 어떤 계기로 오게됐나요?
아빠가 일찍 돌아가셔서 집안형편이 좋지않았어요. 엄마가 저 키우느라고 정말 고생 많이 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농구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했어요. 그러는 와중에도 형편은 나아지지않았고 아르헨티나에서 농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거에요. 하루는 엄마가 ‘힘들면 한국에 가서 농구해볼래?’라고 권하셨고 별다른 망설임없이 바로 한국행을 택했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낯설었어요. ‘안녕하세요’도 한국에 와서 처음 배웠으니까요. 다행스럽게도 한국어, 한글 모두 빨리 배워갔어요. 주변에 다 한국사람들이고 한국말만하니까 알아듣고 소통하려면 배울 수밖에요. 일단 살아야하잖아요.(웃음)



 



Q.전태풍같은 경우 한국에 처음와서 농구 스타일의 차이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핫…, 태풍이 형은 고집이 너무 세서 그래요. 본인이 너무 완벽을 추구하고 그간 해온게 맞다고 확신해서 그런 부분도 있어요. 물론 태풍이형 기술좋고 농구 잘 배운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농구할 곳은 한국이잖아요. 최대한 맞춰보려고 노력하는게 맞다고 생각해요. 앞서도 얘기했듯이 저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요. 적응력이 좋은 편이죠. 저도 제가 배워온 농구와 한국농구가 다소 거리가 있다는 느낌은 받았어요. 하지만 저 역시 팀에서보면 팀원 중 한명일 뿐이에요. 그렇다고 제가 리그 전체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요. 팀원의 한명으로서 녹아들어야죠. 마음만큼 되지않아서 고생도 꽤 했지만요. 태풍이 형도 말만 그랬지 결국에는 잘했잖아요. 괜히 엄살떠는 것 같아요.(웃음)

Q.아르헨티나 이름이 ‘훌리안 파우스토 페르난데스 김’이에요. 어머님이 김씨인거죠?
네 맞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이름에 두 개의 성을 모두 넣을 수 있어요. 거기에 이중국적이 허용되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다른 나라로 가서 국적을 취득해도 아르헨티나 국적은 유지되요. 법적으로 국적을 완전히 버릴 수가 없어요. 제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법이 그래요. 한국에서 대학까지 나왔음에도 군대를 가지않은 이유이기도 해요. 혼혈에, 얼굴 생김새에, 이중국적까지…, 그런 이유 등이 작용했다고 알고있어요.

Q.재능을 온전히 다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은데, 여기에는 포지션 문제도 있었을 듯 싶어요.
그런가요? 제가 또 지나간 것에 대해서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라서요. 어차피 바꿀 수 없으니까요. 선수시절에도 그렇고, 은퇴 후에도 ‘이랬으면 이랬을 것이다’는 얘기도 간혹 듣기는 했어요. ‘3번으로 쭉 뛰었으면 어땠을까?’부터 ‘신인드래프트 당시 SK가 아닌 DB에 지명되었으면 어땠을까?’까지 많더라고요. 어찌보면 비슷한 맥락같네요. 당시 DB에는 김주성 형이 있었잖아요. 국가대표 4번 주성이형을 두고 신인인 저를 파워포워드로 쓰지는 않았을테니까 그렇게 되었으면 스몰포워드로 뛰었을 가능성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저는 SK에서 뽑혀서 선수시절 내내 그곳에서 보냈잖아요. 아무런 의미없는 가정이죠. DB에 뽑혔어도 제가 적응을 못해서 후보로 밀렸을 수도 있고요.(웃음) 물론 팬들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언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커뮤니티 등에서 ‘만약 이랬다면?’이라는 주제로 의견을 주고 받는 것도 쏠쏠한 재미거든요.










“헤인즈의 성공을 보면서 팀과 선수간 궁합의 중요성을 더욱 느꼈습니다”

Q.한창때 하승진을 상대로 수비를 잘했던 것으로 기억나요. 체격차가 상당했는데 어떻게 수비를 했나요?

잘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열심히 막기는 했죠. 일단 신장도 신장이지만 체중도 50kg정도 차이가 나요. 이정도면 경량급과 헤비급 체중차이에요. 그래도 임무가 주어졌으면 해야죠. 힘은 저도 제법 센 편이거든요. 몸으로 충돌하고 힘으로 버티고 수시로 괴롭히고 등 코트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썼죠. 일단 골밑 인근에 좋은 자리는 안주려고 노력했어요. 신장차이가 워낙 많이 나다보니까 잡으면 한골이거든요. 그전에 승부를 봐야 최대한 득점확률을 떨어뜨릴 수 있었죠.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그렇게 막고나면 다음날 온몸이 두들겨맞은 듯 아팠다는 사실입니다.(웃음) 사실 안아픈게 이상한 것이겠만요.

Q.프로 생활하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프로에 지명되었을 때하고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했을 때죠. 어릴 적부터 힘들게 살아와서인지 저는 늘 안좋은 상황도 같이 생각할 때가 종종 있어요. 성격이 부정적이라기보다는 그런 것도 염두에 둬야 뜻밖의 돌발변수가 있을 때 심적으로 덜 흔들리거든요. 신인드래프트 당시에도 그랬어요. 은근히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순번이 밀리는 등 그런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다행히 2순위라는 높은 순위에 지명되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1순위야 하승진이 있어서 절대 불가능했고, 그 외 좋은 선수들도 많았지만 그중에서 제가 제일 먼저 뽑혔다는 것은 정말 뿌듯할 일이었죠. 더불어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했을 때도 하늘을 날 듯이 기뻤어요. 팀성적이 끝없이 추락하던 시절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슬럼프가 온 때도 있었어요. 우승하는 순간 이런저런 아픈 순간들이 기억 속에 떠올랐고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좋더라고요. 이래서 프로는 우승을 향해 달릴 수밖에 없구나 싶었습니다.

Q.함께 뛰었던 외국인선수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선수로는 누가 있을까요?
가끔 받았던 질문인데 그럴 때마다 저는 딱 한 선수를 꼽아요. 단연 애런 헤인즈죠. 재키 존스, 로데릭 하니발, 크리스 랭, 테리코 화이트 그리고 지금의 자밀 워니까지 쟁쟁한 외국인선수들이 SK에서 활약했죠. 그중에서도 헤인즈는 가장 오랫동안 뛰면서 팀에 공헌했고 본인의 전성기 또한 SK시절이었습니다.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각종 누적기록 역시 역대 SK 외국인선수중 독보적이지 않을까 싶어요. 6시즌을 함께 했는데 늘 헤인즈는 꾸준하게 잘했던 기억이 나요. 워낙 영리해서 슛감이 좋지않거나 다소 움직임이 무거운 날에도 돌파, 수비 등 어떻게든 다른 쪽으로 해법을 찾아서 팀에 공헌을 해요. 동료시절 가족끼리 만나서 식사도 하고 그랬습니다. 단기 임팩트만 놓고보면 알렉산더 존슨도 빼놓을 수 없을듯 해요. 정말 괴물이다는 생각이 들만큼 잘했어요. 제가 본 선수중 가장 농구를 잘했습니다. 득점력은 물론 보드장악력도 무시무시했으며 패싱센스까지 있었어요. 무릎을 다쳐서 아쉽게 떠났는데 만약 건강하게 오래 활약했다면 KBL 역사에 이름을 올리는 선수로 명성을 떨쳤을 것이다고 확신합니다.

Q.헤인즈와는 팀과의 궁합도 서로간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맞아요. KBL에서도 처음부터 잘하지는 않았잖아요. SK에 오기 전에는 주로 대체 외국인선수로 자주왔고 팀에서도 2옵션을 맡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확 터지더라고요. 본인도 KBL 무대에 적응을 잘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고, SK와는 여러 가지면에서 서로간 장점이 잘 맞았죠. 헤인즈가 빅맨 스타일은 아니잖아요. 저나 (최)부경이가 골밑 부담을 덜어줬고 그로인해 헤인즈는 본인이 잘하는 플레이만하면 됐죠. 수비도 그렇고 공격동선까지 정말 잘맞는 조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Q.최근 KCC에 들어온 론대 홀리스-제퍼슨도 헤인즈와 플레이 스타일 등이 비슷한 듯 싶어요.
체형이나 미들슛 위주의 플레이 등에서는 비슷한 점도 보이네요. 제가 NBA 경기를 많이 보는편이라 예전부터 제퍼슨의 존재는 알고 있었어요. 이 선수가 KBL에 온다고 할 때부터 ‘오~ 재미있겠다’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 KCC는 아직까지는 제퍼슨을 잘 활용하고 있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윙자원이기도 하지만 가드로서도 뛰었던 선수에요. 몸싸움이나 골밑사수같은 부분에서는 강점이 나오기 힘든 스타일이죠. 물론 KCC에서도 잘 알고 있을거에요. 그런 점에서 팀과 선수 모두 애로가 많을 것 같아요. 제퍼슨은 분명 능력있는 선수지만 현재 KCC는 포스트에서 활약해줄 외국인선수가 필요해요. 당시 SK가 헤인즈의 장점을 뽑아내고 서로 윈윈한것처럼 KCC 역시 활용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않을까 싶습니다.

Q.마지막으로 여전히 농구인 김민수를 기억하고 사랑해주시는 팬분들에게 인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엄마의 나라로 와서 농구를 하게되어 많은 팬들의 사랑도 받고 좋은 순간도 경험하고 이래저래 행복한 농구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시고 아는체할 때마다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응원과 격려도 큰 힘이 되고있어요. 좋은 지도자가 되어 국내농구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본인제공

기사제공 점프볼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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