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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생활 한계왔다" 켈리 폭탄선언, WS 영웅 없을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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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리조나 메릴 켈리가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완벽에 가까운 투구를 보여줬다.
 



[스포티비뉴스=윤욱재 기자] 그가 한국이라는 낯선 무대를 밟을 때만 해도 그는 철저한 무명의 투수였다. 메이저리그 경력이 아예 없었던 것. 그러나 한국에서 보낸 4년의 시간은 그가 메이저리그라는 꿈의 무대로 향할 수 있는 소중한 발판이 됐다.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는 과정 자체가 극적이었던 이 선수는 이제 월드시리즈를 지배하는 영웅으로 떠올랐다. 지금 미국 전역이 이 선수를 주목하고 있다.

바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우완투수 메릴 켈리(35)의 이야기다. 켈리는 21살의 나이였던 2010년 탬파베이 레이스에 합류했으나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마이너리그가 전부였다. 2014년 탬파베이 산하 트리플A에서 9승 4패 평균자책점 2.76으로 뛰어난 투구를 보여줬지만 야속하게도 메이저리그 콜업의 기회는 없었다.

켈리는 고심 끝에 한국행을 선택했다. 2015년부터 SK 와이번스에서 뛰었던 켈리는 그해 181이닝을 던져 11승 10패 평균자책점 4.13을 남겼다. 이듬해인 2016년에는 무려 200⅓이닝을 소화하며 9승 8패 평균자책점 3.68을 기록했다. 투구 내용에 비해 승운이 따르지 않아 '켈크라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켈리의 활약은 계속 이어졌다. 2017년에는 190이닝을 던졌고 16승 7패 평균자책점 3.60을 남기면서 승운도 따르기 시작한 켈리는 2018년 158⅓이닝을 던지며 12승 7패 평균자책점 4.09를 기록하며 그해 SK가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사실 켈리의 평균자책점만 보면 특급 투수와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당시 KBO 리그는 타고투저가 득세하던 시절이었다. 켈리가 평균자책점 부문에서 2016년 4위, 2017년 7위, 2018년 7위에 랭크된 것만 봐도 설명이 가능하다.

켈리가 한국 무대에서 눈부시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자 메이저리그 구단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애리조나와 2+2년 최대 1500만 달러(약 203억원)에 메이저리그 계약을 따내면서 마침내 2019년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데뷔에 성공했다. 사실 그에게 보장된 계약은 2년 550만 달러(약 75억원)가 전부였는데 켈리가 2019년 183⅓이닝을 던져 13승 14패 평균자책점 4.41을 기록하고 단축시즌으로 치러진 2020년 31⅓이닝 동안 3승 2패 평균자책점 2.59를 남기는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자 애리조나는 구단 옵션을 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애리조나 메릴 켈리가 덕아웃에서 그라운드를 응시하고 있다.
▲ 메릴 켈리의 역동적인 투구 장면
 
 



켈리는 승승장구했다. 지난 해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처음으로 200이닝을 돌파(200⅓이닝)한 켈리는 13승 8패 평균자책점 3.37을 기록했고 올해도 177⅔이닝을 던지면서 12승 8패 평균자책점 3.29를 남기면서 정상급 선발투수로 자리매김했다. 켈리가 한국에서 뛰었던 4년 동안 거둔 승수가 48승이었는데 공교롭게도 현재 메이저리그 통산 승수도 48승으로 똑같다. 이미 애리조나는 지난 해 4월 켈리와 2년 1800만 달러(약 244억원)에 연장 계약을 체결한 상태. 그만큼 대접도 달라졌다. 이대로라면 애리조나가 2025년 구단 옵션도 실행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제 켈리는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다. 켈리는 29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 글로브라이프필드에서 열린 2023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텍사스 레인저스를 상대로 7이닝 동안 삼진 9개를 잡으며 무사사구 1실점으로 호투, 애리조나의 9-1 완승을 이끌었다.

켈리는 월드시리즈에서 7이닝을 1실점으로 막으면서 볼넷 없이 탈삼진 9개 이상 기록한 역대 5번째 투수로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았다. 켈리 이전에는 앞서 1949년 돈 뉴컴(월드시리즈 1차전), 2000년 로저 클레멘스(월드시리즈 2차전), 2009년 클리프 리(월드시리즈 1차전), 2017년 클레이튼 커쇼(월드시리즈 1차전)가 기록한 바 있다.

켈리는 올해 포스트시즌에서만 3승 1패 평균자책점 2.25로 맹활약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경기를 뛰는 것이 처음인 선수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사실 켈리가 지금의 영광을 맞이하기까지 '꽃길'을 걸었던 선수는 아니다. 나름 순탄했던 한국에서의 생활도 고비가 있었다.

미국 '디 애슬래틱'은 30일 켈리가 한국에서 뛰던 시절에 있었던 사연을 소개했다. 때는 2016년이었다. 켈리는 인천의 한 양식당에서 아내, 형, 그리고 그의 에이전트와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그런데 켈리는 이 자리에서 "한국에서의 생활이 한계에 다다랐다"라고 '폭탄 선언'을 했다. 이어 그는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더라도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라면서 당장이라도 한국을 떠날 것처럼 이야기했다.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켈리는 몸은 한국에 있지만 매일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상상을 했다. 한국시간으로 오전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메이저리그 경기를 챙겨볼 정도였다. 차라리 마이너리그 계약이라도 맺고 메이저리그 무대에 도전해보자는 의미였다.

켈리의 '폭탄 선언'에 에이전트 카론은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켈리가 화장실에 간 사이, 카론은 켈리의 아내와 형에게 "켈리가 미국에 가도록 내버려두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카론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켈리가 조금만 더 한국에서 활약을 이어가면 마이너리그 계약보다 더 나은 수준의 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 한국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한 메릴 켈리
▲ 메릴 켈리가 월드시리즈 진출이 확정되자 기뻐하고 있다.
 
 



만약 그때 카론이 켈리를 말리지 않았다면 켈리의 미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금의 월드시리즈 영웅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카론은 '디 애슬래틱'을 통해 "어제 일처럼 기억이 생생하다"라면서 "켈리가 다른 남자들과 다른 점은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을 때까지 한국에서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이다"라고 회상했다.

켈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쉽게 현실에 안주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나의 선택사항이 아니었다"는 켈리는 "그것 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며 한국에서 뛰던 시절에도 반드시 메이저리그 무대에 도전하겠다는 열망이 가득했음을 말했다.

켈리는 남들보다 늦게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했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30대의 나이에 데뷔한 메이저리거 켈리는 5년 동안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고 이제는 월드시리즈라는 가장 큰 무대에서도 최고의 피칭을 선사하는 스타 플레이어로 등극했다. 켈리와 함께 뛰는 애리조나의 '에이스' 잭 갤런은 "나는 늘 켈리가 야구계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투수라고 말했다"라고 언젠가 켈리가 세상에 빛을 보는 그날이 올 것이라 확신했음을 말했다.

20대의 나이에 한국으로 향한 것은 켈리의 운명을 바꾼 선택이었다. 켈리는 월드시리즈 2차전을 마치고 "솔직히 말해서 나는 26세의 나이에 한국으로 가는 것이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던지는 것, 심지어 월드시리즈에서 투구하는 것보다 훨씬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이제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애리조나는 켈리의 호투 덕분에 월드시리즈 2차전을 승리하고 1승 1패로 시리즈 균형을 맞추는데 성공했다. 애리조나와 텍사스의 월드시리즈 3차전은 오는 31일 애리조나의 홈 구장인 체이스필드에서 열린다. 애리조나는 2001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22년 만에 다시 한번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창단 첫 월드시리즈 우승에 도전하는 텍사스의 열망을 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메릴 켈리가 투구하고 있다.
▲ 메릴 켈리의 활약이 포스트시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기사제공 스포티비뉴스

윤욱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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