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오타니 쇼헤이(29)는 고교 시절부터 일본프로야구 최고 재능 중 하나로 손꼽혔다. 많은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아마추어에서 뛰던 오타니에 큰 관심을 드러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 중 국제 계약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많고 유연한 LA 다저스도 당연히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대다수의 일본 선수들이 그렇듯, 오타니는 일본프로야구에 먼저 발을 내딛었다. 성공한 뒤 미국에 가도 늦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훗날 당시 오타니 스카우트의 가장 적극적인 팀 중 하나로 알려진 LA 다저스도 한 차례 좌절을 맛봤다. 하지만 선수가 언젠가는 메이저리그에 가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고, 다저스도 포기하지 않았다. 오타니의 성장 과정을 빠짐없이 구단 스카우팅 리포트로 남겼다.
다저스와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예상대로였다. 오타니는 슈퍼스타급 선수로 성장했다. 그것도 현대야구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긴 투‧타 겸업에 도전하는 선수였다. 일본에서는 나름의 '이도류' 실적도 남겼다. 2017년 시즌이 끝난 뒤, 다저스는 다시 기회를 얻었다. 오타니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고, 소속팀 니혼햄도 이를 대승적인 차원에서 수락했다. 다저스에게 두 번째 기회였다.
오타니는 당시 국제계약선수 자격이었다. 선수에게 돌아가는 돈이 별로 없었다. 각 팀은 국제계약 보너스풀이 있고 그 한도에서 오타니를 영입해야 했다. 올인해봐야 500만 달러 수준이었다. 그러나 오타니는 당장의 금전적 손해를 감수했다. 빨리 메이저리그로 나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취득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다. 단돈 300만 달러 남짓에 오타니를 품을 수 있으니 시장에 광풍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그 광풍의 선두주자가 바로 다저스였다.
오타니 측은 구단들을 직접 불러 '프리젠테이션'을 하도록 했다. 다저스는 그 허락을 받은 구단 중 하나였다. 팀을 대표하는 스타들과 예전 다저스에서 뛰었던 일본 선수들까지 간접적으로 동원해 오타니 마음 사로잡기에 나섰다. 하지만 투‧타 겸업을 가장 적극적으로 밀어준 LA 에인절스의 손을 잡으며 다저스는 두 번째 실패를 맛봤다.
그 다음 이야기는 잘 알려진 대로다. 오타니는 메이저리그 최고 선수로 우뚝 섰다. 말도 안 되는 '투‧타 겸업'으로 메이저리그의 역사 자체를 바꿨다. 타자로는 6년간 701경기에서 타율 0.274, 171홈런, 437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922를 기록했다. 이 기간 리그 평균보다 48%나 좋은 OPS였다. 투수로도 5시즌 동안 86경기에 나가 38승19패 평균자책점 3.01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평균자책은 이 기간 평균보다 42%나 좋았다. 하나하나씩만 봐도 다 올스타인데, 오타니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해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이런 선수는 없었다.
벨트에 두른 업적도 화려하다. 팔꿈치 수술 여파에서 모두 벗어나고, 본격적으로 투‧타 겸업을 시작한 2021년 만장일치로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의 역사적인 홈런 레이스 속에 2위에 그쳤지만, 올해 MVP를 탈환했다. 막판 팔꿈치 부상으로 135경기 출전에 그쳤음에도 44개의 홈런을 때려 생애 첫 홈런왕에 등극함은 물론 출루율‧장타율‧OPS‧루타에서도 모두 1위를 싹쓸이했다. 투수로도 23경기에서 10승5패 평균자책점 3.14를 기록하며 선전했다.
말 그대로 원투펀치급 선발 투수에 홈런왕에 도전할 수 있는 4번 타자였다. 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역사적인 재능이었다. 다저스는 이 재능을 포기할 수 없었다. 오타니의 FA 자격 취득이 1년 앞으로 다가오자 대놓고 '오타니를 잡겠다'는 행보를 펼쳤다. 지난해 FA 시장에서 지출을 최소화하며 사치세(부유세) 기준을 리셋하기 위해 애를 썼다. 사치세 누적을 원점으로 돌려놓은 뒤, 오타니에 올인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리그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오타니 영입전을 준비한 팀이다.
이제 다저스의 그 준비가 빛을 발할 수 있을지를 확인해야 한다. ESPN을 비롯한 현지 언론들은 오타니가 조만간 최종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 메이저리그 윈터미팅이 4일(한국시간)부터 7일까지 열리는데, 이 시기를 전후해 행선지를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질질 끌지 않고 한 방에 모든 것을 끝내겠다는 전략이다. 실제 오타니는 메이저리그 진출 당시에도 최종 면접 구단을 빨리 결정했고, 면접을 다 본 뒤 결정도 빠르게 했다. 정작 협상에 들어가서는 일주일 정도 만에 모든 의사 결정을 마무리한 기억이 있다.
구단의 전략에 '경고'를 내린다는 관점도 있다. '밀당'은 없다. 오타니 영입에 관심이 있는 팀들에게 몇 차례나 면담을 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첫 판에 가진 돈을 다 내놔야 한다. 구단이 가진 한도치를 다 불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팀에 뺏길 수 있는 것이다. 팔꿈치 부상 문제, 장기 계약에 대한 우려감 등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 놓치면 평생 오타니를 영입할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
메이저리그 윈터미팅은 내슈빌에서 열리지만, 오타니 측 관계자들은 윈터미팅에 가지 않고 LA에서 협상을 이어 갈 전망이다. 원하는 구단은 LA로 오라는 식이다. 오타니가 '갑'임을 실감할 수 있다. 다저스를 비롯, 토론토, 샌프란시스코, LA 에인절스 정도가 시장에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총액 5억 달러를 가뿐히 넘길 것이라는 전망, 심지어 인센티브를 포함한 총액이 6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 속에 뉴욕 양키스, 시카고 컵스, 보스턴, 텍사스는 철수하는 분위기다.
다저스는 오타니가 절실히 필요하다. 매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팀에다 정규시즌은 거의 매년 1등이었다. 그런데 한 방이 부족했다. 돌이켜보면 영웅적인 에이스가 없었고, 올해를 봐도 알 수 있듯이 큰 경기에 강한 타자도 부족했다. 비록 올 시즌 막판 받은 팔꿈치 수술로 내년 마운드 등판은 어렵지만, 오타니는 타자로도 다저스 타선에 어마어마한 장타력을 불어넣을 수 있음은 물론 2025년부터는 에이스 몫도 수행이 가능하다. 매력적인 자원이다. 마케팅 시너지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시장은 오타니의 결정에 주목하고 있다. 원래 FA 시장이라는 게 최대어 계약이 많은 것을 바꿔놓는다. 이 선수를 놓친 팀들이 다른 전략을 짜면서 더 활발한 시장 움직임이 만들어지곤 한다. 일단 오타니라는 큰 돌 하나가 빠져야 나머지 돌들도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다저스가 10년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고 가정하면, 트레이드 시장에 말 그대로 광풍이 일어날 수도 있다. 오타니의 역사적인 선택이 다가오고 있다.
기사제공 스포티비뉴스
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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