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캐피탈은 2015년 변화와 혁신을 위해 당시 현역 선수 최태웅에게 바로 사령탑의 지휘봉을 넘겼다. 2023년 12월 현대캐피탈이 또 다른 변화를 예고했다.
현대캐피탈은 지난 21일 저녁 보도자료를 통해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배구단이 감독을 교체한다”면서 “침체된 구단 분위기를 쇄신하고 새로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감독을 교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성적 부진의 책임을 물어 최태웅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진순기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으로 남은 시즌 팀을 이끈다. 차기 사령탑 선임을 서두르지는 않을 계획이다.
현대캐피탈은 2005년 V-리그 출범과 함께 두 시즌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거뒀고, 6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무대에 올라 두 차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13-14시즌까지 최소 정규리그 3위에는 이름을 올렸다.
그러던 2014-15시즌 정규리그 5위라는 가장 낮은 순위표를 얻었고, 결국 변화를 택했다. 2015년 현대캐피탈 선수로 뛰던 세터 최태웅을 김호철 감독(현 IBK기업은행 감독)에 이어 제8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현역 선수에서 곧바로 감독으로 임명된 V-리그 첫 번째 사례였다. 선수 은퇴와 동시에 현대캐피탈의 새 수장이 됐다.
당시 현대캐피탈이 꺼낸 키워드는 변화와 혁신이었다. 명가 재건을 위해서였다. 선임 당시 최태웅 감독도 “구단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배구 명가 현대캐피탈만의 스타일을 느낄 수 있도록 색깔 있는 배구를 펼치고 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구단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선수 시절에도 화려한 발자취를 남겼다. 2005년 삼성화재 소속으로 프로 출범 등록 이후 2010년 현대캐피탈로 이적해 2015년 현대캐피탈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그동안 V-리그에서 4차례 세터상(2005-06, 2006-07, 2007-08, 2008-09시즌)을 받았고, 2008-09시즌 챔피언결정전 MVP를 거머쥐기도 했다. 2012-13시즌이 열린 2013년 1월 23일에는 남자배구 최초로 세트 1만개를 성공시키며 새 역사를 썼다.
선수 시절 V-리그 310경기 출전해 227승을 기록했고, 아직까지 역대 선수 최다 승수 공동 14위에 랭크돼있다.
다만 초보 감독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최태웅 감독은 스피드배구 및 토털배구를 공표하며 팀 변화를 꾀했고, 첫 시즌이었던 2015-16시즌부터 최초의 길을 걸었다. 부임 첫 시즌인 2015-16시즌부터 4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성공했고, 이 가운데 두 차례 챔피언에 등극하기도 했다. 정규리그 우승도 두 차례 있었다.
그러던 2019-20시즌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한 뒤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2020-21시즌 6위, 2021-22시즌 7위 최하위에 머물며 배구 명가의 자존심을 구겼다. 이내 1년 만에 반등에 성공했다. 2022-23시즌 정규리그 2위 기록, 2018-19시즌 챔피언 등극 이후 4시즌 만에 챔피언결정전 무대를 밟았다. 대한항공에 가로막혀 준우승에 그쳤지만 리빌딩 3년 차에 이룬 유의미한 성과였다.
그만큼 2023-24시즌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선수들도 자신감이 올랐다. 하지만 현재 현대캐피탈의 위치는 6위다. 2023-24시즌 V-리그 정규리그에서 단 4승을 거뒀다. 4승13패(승점 16)를 기록했다.
현대캐피탈은 최태웅 감독과 지난 2021년 5월 3년 재계약을 맺은 바 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2024년 3월까지 동행이 이어질 예정이었지만 2023년 12월, 9시즌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게 됐다. 최태웅 감독은 9시즌 동안 감독으로서 역대 통산 299경기를 치르면서 172승 기록, 신영철-신치용-김호철 감독에 이어 감독 최다 승수 4위에 이름을 올리며 코트를 떠나게 됐다.
2023년 비시즌부터 최태웅 감독의 고민은 깊었다. 새 시즌을 대비하기 위한 훈련 시간이 부족했다. 현대캐피탈은 비시즌 내내 주전 멤버들의 대표팀 차출로 어려움을 겪었다. 리베로 박경민과 허수봉은 5월부터 대표팀에 소집돼 9월 말 항저우아시안게임까지 일정을 소화했다. 여기에 지난 시즌 막판에 발목을 다쳤던 전광인도 2023년 여름 대표팀에 발탁돼 국제대회에 동행했다. 김명관도 잠시 국가대표로 뽑히면서 태극마크를 달았다.
‘젊은 피’ 김선호, 이현승, 홍동선, 정태준도 청두 유니버시아드 대회 한국 대표로 선발돼 자리를 비워야만 했다.
리비아 출신의 외국인 선수 아흐메드 이크바이리(등록명 아흐메드)도 대표팀 일정으로 인해 9월 말에 한국 땅을 밟았고, 아시아쿼터로 선발한 미들블로커 차이 페이창도 대만 국가대표로 항저우아시안게임까지 소화하며 새 팀에서 호흡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다.
전광인은 개막전부터 선발로 나섰지만 결국 발목 부상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태웅 감독은 “점프가 안 된다”고 밝혔다. 홍동선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복근 부상을 당했고, 11월 25일 대한항공과 2라운드 맞대결부터 꾸준히 선발 기회를 얻고 있지만 시간이 필요해보인다.
아흐메드가 제 몫을 해도, 지원 사격이 부족했다. 국가대표팀에서 아포짓과 미들블로커를 오갔던 허수봉은 소속팀에서 아웃사이드 히터를 역할을 하고 있고, 시즌 초반 기회를 얻었던 프로 2년차 세터 이현승이 흔들리자 다시 김명관을 투입하기도 했다.
팀이 전체적으로 흔들렸다. 팀 득점 2위, 리시브 2위, 서브와 수비 3위에 올랐지만, 공격 종합과 세트는 6위에 그쳤고, 블로킹은 5위였다.
배구는 팀 스포츠다. 훈련 시간 부족이 영향을 끼친 것도 맞다. 여기에 부상 악재까지 겹쳤다. 그럼에도 선수 변화가 크게 없는 현대캐피탈이 한 시즌 만에 달라진 모습에 아쉬움을 남겼다. 개막 5연패 이후 6연패, 다시 연패를 기록하며 극심한 부진을 겪었다. 코트 위에서 팀 중심을 잡아줄 선수도 보이지 않았다.
최태웅 감독이 12월 17일 대한항공전 작전 타임에 선수들에게 전한 메시지도 이슈였다. 당시 최태웅 감독은 “부담감도 아니고, 압박감도 아니라고. 훈련 부족이라고. 겉멋 들지 말라고”라며 “무슨 미래를 봐. 자존심 싸움하라고”라고 호통을 쳤다.
주축 멤버 대거 대표팀 차출, 부상 악재에도 결과론적으로 리빌딩을 위해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기대치에 못 미쳤다. 박경민과 허수봉만이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현대캐피탈은 2020년 11월 한국전력에 베테랑 미들블로커 신영석을 내주는 파격적인 3대3 트레이드를 단행하며 대대적인 변화를 꾀했다. 이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서도 팀에 맞는 선수들로 팀을 꾸리고자 했다.
앞서 2019년 전체 1순위 김명관, 2020년 전체 1순위 김선호와 1라운드 4순위 박경민, 2021년 전체 1순위 홍동선과 2순위 정태준, 2022년 전체 2순위 이현승 등을 지명했다. 위기의 순간 팀을 구할 영웅은 나타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현대캐피탈이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하지 않은 한국전력 임성진, 대한항공 정한용 등은 어느덧 주전 한 자리를 꿰차며 주가를 올리고 있다. 특히 올 시즌 정한용의 활약은 인상적이다.
결국 현대캐피탈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지 못했다. 2015년부터 동행한 최태웅 감독과 결별을 택했다. 최태웅 감독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배구공을 잡은 뒤 V-리그 선수로 11시즌, 사령탑으로 9시즌을 치르며 쉼 없이 달려왔다. 2023년 12월, 배구 인생 37년 만에 쉼표를 찍게 됐다.
사진_KOVO
기사제공 더 스파이크
이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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