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N스포츠 박연준 기자) "얼핏 보면 변화된 것 같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달라진 것이 없다. 한국 야구를 비롯한 아마 스포츠의 몰락이 우려된다"
윤석열 정부에 들어서 그간 문제점으로 지적된 학생 선수 출석 인정 일수(결석 허용일수)가 확대됐다. 2022년 초등학교 5일, 중학교 12일, 고등학교 25일에서 2023년 각각 초등학교 20일, 중학교 35일, 고등학교 50일로 대폭 늘렸다.
다만 이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출석 인정 일수를 늘렸으나, 차감하는 방식이 바뀌면서 선수들의 운동 보장 시간이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학업 성적이 나쁘면 대회 출전 및 운동 시간이 줄어드는 최저학력제에 따라 야구선수를 비롯한 학생 선수들은 공부와 운동,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동시에 본인의 휴식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 역시 계속되고 있다.
아마추어 선수들 출석 인정 일수, 겉으로 보이는 숫자만 바뀌었다
학생 선수 출석 인정 일수는 2022년 1월 초, 스포츠 혁신위원회(이하 스포츠 혁신위)가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과 인권 보호 및 증진을 목표로 결석 인정 일수를 2021년 초등학교 10일, 중학교 15일, 고등학교 30일에서 2022년 초등학교 5일, 중학교 12일, 고등학교 25일로 단축하면서 화두가 됐다.
당시 야구계를 비롯해 체육계는 "선수들의 학습권도 중요하지만, 운동할 수 있는 운동권 보장은 잊혀진 것 같다. 운동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이 운동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말이 되나"라고 입 모아 반발했다.
이후 2022년 하반기,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는 국정과제로 스포츠 혁신위의 해당 출석 인정 일수를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초·중·고 출석 인정 일수는 2023년부터 각각 초등학교 20일, 중학교 35일, 고등학교 50일로 증가했다.
출석 인정 일수 증가로 선수들이 운동할 수 있는 시간 및 대회 참가를 위한 활용 시간이 증가한 것처럼 보였다. 다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더 빠듯해졌다.
교육부의 해당 매뉴얼 내용
이는 출석 인정 일수 확대와 함께 학생 선수 출결 관리 매뉴얼이 새롭게 생겼기 때문이다. 확대 이전 야구선수를 비롯한 아마추어 운동선수들은 대회 및 훈련 참가 등의 사유로 인해 '지각•조퇴•결과'를 시간과 관계없이 총 3일을 할 경우, 1일 결석으로 처리했었다.
확대 이후엔 기존 일수 차감 방식과 전혀 다른 누적 시간으로 이를 처리, 총 6시간 수업에 결석하면 1일 결석 처리했다. A 고교야구부 지도자는 24일 MHN스포츠를 통해 "정부, 교육부의 눈속임이 아닐까 생각들 정도로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선수들이 훈련 시간을 활용하는데 어려움이 생겼다"고 호소했다.
A 지도자는 "확대 이전 당시에도 인정 일수가 25일밖에 되지 않아서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선수들이 오전 3교시 수업 후 오후에 훈련에 임할 수 있었다"며 "인정 일수가 50일로 증가했을 때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이 여유로워지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출결 관리 매뉴얼로 인해 달라진 게 없었다. 오히려 카운트 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선수들이 오후 수업까지 듣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체감상 달라진 건 없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야구의 경우 실전 훈련이 매주 중요하다. 주말리그, 전국대회를 앞두고 타 학교와 연습 경기를 잡으려고 해도, 정규 수업을 다 받고 나오면 시간이 4시가 넘어간다. 또 우리 야구장엔 조명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날이 어두워지면 연습 경기 자체를 진행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출석 일수는 확대되었지만, 실질적으로 선수들이 운동할 수 있는 시간에 오히려 제약이 생겼다는 것이다. 개정 전의 경우 시간과 관계없이 3일 조퇴가 하루 결석 처리가 되어 일주일에 약 1.7일의 인정 일수를 차감했으나, 개정 이후 현재는 오후 수업을 빠질 경우 일주일에 2.5일이 차감되는 상황이 초래됐다.
여기에 평일 열리는 전국대회 출전까지 겹치면 확대 전보다 확대 후 출석 일수 차감이 더 많아져, 두 배가량 인정 일수가 늘었다고 해도 실상, 운동 시간이 증가한 것이 아닌, 오히려 상황은 확대 이전과 똑같았다.
또 다른 B 지도자는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주말에 훈련을 대체하고 싶어도 사회인 야구 경기가 있어 야구장 사용이 어렵다. 결국 정상적인 훈련 진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출석 인정 일수를 유지하되, 출결 관리 매뉴얼 방식을 예전과 같이 진행하길 희망한다. 선수들의 학습권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운동할 수 있는 권리 아닌가. 정부에서 이 부분을 다시 생각해 주길 바란다"고 힘줘 말했다.
'최저학력제' 현장에선 "선수들 낙오자로 만드는 것" 반발
출석 인정 일수와 함께 최근 아마 야구계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최저학력제다. 최저학력제는 학생 선수들의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주요 교과 성적이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할 때 대회 출전을 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학교가 학생 선수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만든 제도다.
MHN스포츠가 입수한 올해 최저학력제에 대한 공문 내용에 의하면 초등학교는 해당 과목 학년 평균의 50%, 중학교 40%, 고등학교 30%의 기준을 넘어서야 한다. 만약 이 기준을 넘지 못할 경우, 해당 선수는 다음 학기(6개월 출전 정지)에 열리는 대회에 출전이 불가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반 학생이 최저학력 기준을 못 넘었다고 해서 유급 등 불이익을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학생 선수라는 이유로 선수들이 차별 및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해당 내용을 두고 야구계를 비롯한 전 종목 학부모들 역시 반대 입장을 보였다. 앞서 교육부는 "2023년 2학기 말 최저학력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 선수는 2024년 1학기 대회 참가를 막겠다"고 공문을 내린 바 있다. 이에 스포츠계와 학부모는 즉각 반발했고, 교육부는 지난 10일 해당 내용을 철회했다. 다만 이는 최저학력제 폐지가 아닌 일정을 올해 1학기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바뀐 것뿐이었다.
중학교 야구 선수 자녀를 둔 C 학부모는 "최저학력제로 인해 아이가 야구부 훈련이 끝난 뒤,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닌 밤늦게까지 공부와 e-스쿨(교육부의 인터넷 보충 수업 사이트)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다"라며 "야구선수가 야구에 집중하지 못하고 공부를 더 해야 한다면, 어떻게 야구선수가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야구선수가 아닌 일반 학생으로서 수능을 준비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출석 인정 일수로 인해 학교 정규 수업을 전부 다 듣고 있다. 하루에 야구할 수 있는 시간은 2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운동선수의 학습권 보장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운동과 학습을 병행하는 것 아닌가. 현재 야구와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아닌 공부만 하는 이 현실은 선수로서 우리 아이의 앞길을 막고 있다. 최저학력제 폐지를 강력히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저학력제 폐지는 야구계 외적인 종목에서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민국 운동선수 학부모 연대의 한 학부모는 본 기자를 통해 "선수들이 운동하지 못한다면 그게 과연 운동선수인가. 최저학력제는 우리 아이를 낙오자로 만든다. 이 나라의 정책은 운동선수로 성공하기 힘드니 미리 포기할 준비를 시키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라며 "윤석열 대통령께 간곡히 말씀드리고 싶다. 이대로라면 야구를 비롯한 우리나라 스포츠가 망한다. 최저학력제 폐지와 출석 인정 일수 제도 전면 검토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고교야구 한 감독 역시 "수업, 야구, 공부 등 선수들이 세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것이 현 상황이다. 실질적으로 아이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없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이 수업 시간에 자는 경우가 더 빈번해졌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잠을 잔다고 지적하는 선생님들의 말씀들이 더 많아졌다"며 "하나에 열중해도 모자란 상황에 세 가지 모두 잡으려 하다 보니, 오히려 아이들이 탈이 나고 있다. 공부와 야구 모두 놓치게 된 것이다. 또 휴식 시간이 없다 보니, 부상도 쉽게 당하고 있다. 아이들이 훌륭한 야구선수가 될 수 있도록 정상적인 환경을 하루빨리 제공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육부 "신중한 접근 필요해...더 이상 규모는 지나쳐"
교육부 관계자는 23일 MHN스포츠와 전화에서 "최저학력제 폐지에 대해 교육부의 공식 입장을 말하기엔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장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있는 것은 교육부도 알고 있다. 다만 최저학력제는 학교 체육 진흥법에 근거한다. 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내부 검토 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출석 인정 일수에 대한 질문에는 "이 부분 역시 신중하게 봐야 한다. 다만 야구의 경우 무조건 전국 대회를 다 나가는 게 아니지 않나. 고교야구의 경우 출석 허용 일수를 50일을 받는데, 더 이상의 규모는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면 적절히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전했다.
그러면서 "선수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하기 시작해서 프로에 도달하기까지 비율이 높지 않다. 교육부는 이러한 부분들을 종합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연아의 '1만 시간 법칙'은 자기의 분야에 성공하기 위해서 1만 시간 이상 집중하고 노력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학생 선수 출석 인정 일수 제도하에선 타고난 천재 선수 이외에는 운동선수로 성공할 확률이 더욱 희박해졌다. 또 교육부의 이러한 생각으로 인해 선수들이 학업을 아예 포기하고 운동에만 집중하는 사회 현상을 조성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학생 선수 인권 보호' 공약, 이제는 보여줘야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당시 내세운 스포츠 관련 주요 공약은 '스포츠 혁신위 권고안 재검토'였다. 해당 내용에는 학생 선수 인권을 최대한 보호, 유능한 미래의 전문체육인 양성, 학생 선수 주중 대회 참가 제한 폐지가 있었다.
다만 윤석열 정부 출범 약 3년 차, 22개월이 지난 현재 윤 대통령의 해당 공약은 사실상 보여지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의 해당 공약이 '대통령 당선' 목적으로만 만들어진 발언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지켜져야 한다.
윤 대통령의 '유능한 미래의 전문체육인 양성'의 발언은 공부하는 학생 선수가 아닌 열심히 운동하는 학생 선수다. 과연 선수들이 현재 온전히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 있을까. 대한민국 야구의 위상, 스포츠 발전의 키는 정부가 쥐고 있다. 선수들이 야구선수와 운동선수라는 꿈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뿌리가 튼튼해야 나무가 잘 자라는 법. KBO리그 800만 관중 지속 유지, 국제 대회 활약의 기초는 한국 야구의 뿌리인 아마야구에서 나온다. 선수들이 더 좋은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하루빨리 정부에서 해당 제도들의 재검토를 살펴봐야 한다.
사진=MHN스포츠 DB, 연합뉴스, 교육부
기사제공 MHN스포츠
박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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